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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397

그러니까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이다 최규학 새는 나뭇가지에 앉고 구름은 높은 산마루에 앉는다 나무가 새를 부르려면 가지가 많아야 하고 산이 구름을 부르려면 다른 산 보다 높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가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2020. 1. 31.
나목 나목 최규학 한 겨울 나목의 맨살을 만져보고 싶다 자신의 체온을 얼음처럼 낮춰 추위와 싸우는 나목을 포근 안아주고 싶다 칼바람의 공격이 아무리 거세어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나목의 곁에 서서 속삭이고 싶다 갑옷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총탄과 화살을 맞았던 조선의 어느 장군처럼 용감하다고 얼어붙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영웅이 되어가는 나목에게 큰 절을 올리고 싶다 길어야 백일을 싸우면 나목은 동장군을 물리치고 개선하리라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가 얼어도 결코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리라 봄이 되면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지상 최대의 승전 페스티벌에 참여하리라 나목의 전술은 그저 다 벗어 던지는 것뿐 그저 견디는 것뿐 스스로 죽거나 물러 나지 않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어떤 전략도 없이 어떤 타협도 없이.. 2020. 1. 24.
바보의 노래 / 최규학 바보의 노래 최규학 나는 바보처럼 나아가리라 겨울을 준비하지 않는 베짱이처럼 부르는 노래를 멈추지 않으리라 겨울이 코앞인데 단풍들지 않는 소나무처럼 가을에는 가을만 생각하리라 갑자기 겨울이 닥치면 있는 그대로 멀쩡하게 하얀 눈 속에 잠기리라 2020. 1. 10.
코타키나발루의 선셋 코타키나발루의 선셋 최규학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어떻게 해가 지는가 코타키나발루에서는 붉은 단풍잎 한 장 떨어지듯이 붉은 오리알 하나 떨어지듯이 붉은 홍시감 하나 깨어지듯이 해가 떨어진다 기러기처럼 날아와 야자수 아래 앉은 나는 무슨 계시라도 받으려는 듯 무슨 깨.. 2020.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