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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정(고향)소식]1564

[백제 부흥군]<백강전투 이야기> 정찬응 [백제 부흥군] 백제 부흥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위해 유인원은 본국에 병력 증원을 요청하였다. 당나라에서는 손인사(孫仁師)를 총관으로 삼고 병사 7천을 주어서 웅진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당초에는 40만 대군을 보낸다고 소문을 냈으나 실제로는 7천 명의 지원군만 준 것이다.손인사는 장안을 떠나기 전날 이번 일을 주도한 이세적을 만나자 마자 불평부터 늘어놓았다.“40만이라더니 고작 7천입니까?”이세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우리는 7천을 보내지만 신라에서도 3만은 보낼 것이오. 어명도 있고 하니 40만 대군이 온다고 크게 떠들어요. 의자왕은 죽었으니 태자로 있던 융(隆)을 데리고 가시오.”“융을 요?”“사람이라는 건 달래야지 윽박지르기만 하면 반발하는 법이오. 백제 백성들을 달래는 데 쓸모가 있을 .. 2025. 7. 7.
[유경회] 2025년도 상반기 정기모임 후기 향우님 안녕하세요올여름은 유난히 덥다고 합니다.무더운 여름 보양식 챙겨드시고 이열치열 운동도 열심히 하시면서 건강하게 여름 보내시고 가을쯤 해서 야외 고향동네 다녀오면 어떨까? 합니다 어제 25년도 상반기 모임에 조황연 고문님을 비롯 조성건 회장님, 김동섭 향우님 외 모두 7명이 조촐하게 만났습니다조성건 회장님의 식사 찬조로 보양식을 하고 왔습니다참석하려고 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못 오신 향우님, 그리고 사정 상참석하지 못 한 향우님들의 고향사랑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고향이 있다는 건 축복이고 힘입니다좋은 추억 많이 기억하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빕니다모임을 하면서 느끼는 건"세월에 장사 없다 "라는 말을 실감 나게 합니다가까이 마주했던 주변 지인분들이 한 분 두 분 세상과 이별하시고 아파서 누워계시고참 .. 2025. 7. 5.
[찾아가는 부여 마을 문화] <임천면편> 사)백제예술문화연구소百濟一日一史임천면숲은 산지에 우거져 있다. 차령산맥 말단에 해당하는 충남 부여군의 임천면은 험준한 산세를 이루므로, 나무숲을 이루기에 알맞은 곳이다. 임천은 백제시대에 이미 수륙의 요충지로 알려졌고, 본래 백제의 가림군(加郡)이었는데, 통일신라 시대 757년(경덕왕 16) 경덕왕이 가림(嘉林)으로 고쳐 웅주(熊州)에 예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가림군(嘉林郡)으로 하였다가 후에 가림현(嘉林縣)이 되어 감무가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 임주자사(林州刺史)를 두었다가, 다시 가림현(嘉林縣)이 되었고, 1315년(충숙왕 2) 지임주사(知林州事)로 승격하였다. 1394년(태조 3) 가림부(嘉林府)로 승격되었다. 1401년(태종 1) 환원되었다가 1403년 다시 부(府)로 되었다. .. 2025. 7. 3.
[찾아가는 부여 마을 문화]<세도면/화수리편>정찬응 사)백제예술문화연구소百濟一日一史부여의 백제예술문화(扶餘의 百濟藝術文化)세도면 화수리(花樹里)세도면의 북쪽에 위치해서 동남쪽으로는 토성산이 그리고 중앙에 군환산이 서서 비교적 낮은 산악지대를 이루며 서쪽에서 동남쪽으로 흘러가는 화수천 유역과 남쪽에 펼쳐지는 들이 넓은 지역에 화수리는 자리한다. 야산지대에 자연스럽게 피는 꽃이 아름다워 인심도 후하다는 화수리는 봄과 가을을 통해서 시인 묵객이 많이 찾아드는 지역이기도 하다. 백제 때는 가림군(加林郡)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가림군(嘉林郡)에 속했었다. 인류의 정착은 백제 때부터이며 가림성(加林城) 지역의 외곽성인 토성산성이 이 지역에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때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지역이었다.고려 때는 임천군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임천군 성.. 2025.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