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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정(고향)소식]1513

[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 <군수리> [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 "정찬응"백제때 군사들이 주둔하여 군수이며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침입으로 황폐화되고 조선 중엽부터 촌락을 형성하고 군수(軍守)들 또는 군수평(軍守坪)이라 불려졌다. 백제시대에는 꽃다운 여성들이 찬란한 옷차림으로 이곳을 왕래하였다 하여 꽃정 또는 꽃노들(곶노들)이라 불렸으며, 두루미 마을은 백제때 문무백관들의 수뇌가 모여 회의장소로 쓰던 누각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군수리 (군숫들, 군수평)는 본래 부여군 현내면의 지역으로 백제때 군사가 주둔하였던 들이므로 군숫들 또는 군수평(軍守坪)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수리라 칭해져 오다 군수, 신기(新基)로 분구되었다, 뜸별로는 백제때 군사가 주둔하였던 지역에 마을이 생겼다 해서 군숫.. 2025. 4. 17.
[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 <동남리>《궁남지 포룡정 구전 이야기》 [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 "정찬응"사) 백제예술문화연구소(社団法人百済芸術文化研究所)부여일일일사(扶餘一日一史)사비왕궁 남쪽 이궁지 동남리동쪽에 일산 금성산 남쪽에 화지산 무왕#이 20리 길 강물을 끌어 만든 국내 최초 궁남지 사비백제의 도성 중심에 정림사지 가 있다 조선시대 초기, 말기는 부여군 현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동산리, 마천, 신대리, 남산리, 학서리 일부와 대방면의 탑동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과 남산의 이름을 따서 동남리라 하였고, 화지산망해정, 팔각샘과 이궁터 등이 있는 사비궁의 남쪽 마을이다. 뜸별로는 삼국유사 제2권 무왕 편에 백제의 마동왕자(무왕)가 신라의 선화공주와 이곳에 살다가 왕이 되었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화지산 《망해루》에서 정사를 살폈다는 사료와.. 2025. 4. 17.
[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 "정찬응" [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 "정찬응" 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라는 책을 냈습니다.개발 때문인 지형변화와 도로명 주소로 바뀌며 잊혀가는 마을의 유래와지명이 아쉬워 마을에 사료와 구비전승되는 지역민의 전언 등을 모아 한 권 책으로 모았습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여 오늘부터 마을별 이야기를 올려드릴까 합니다.내용 중 구비전승되는 이야기를 취소한 부분이 있어 다소 개인에 따라 달리하는 부분도 있습니다.이해하시고 부디 감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2025. 4. 17.
[2025년 3월 25일] 재경 부여군민회 상반기 확대임원회의 2 [2025년 3월 25일] 재경 부여군민회 상반기 확대임원회의 2025.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