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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397

배꽃각시 / 최규학 배꽃각시 최규학 외딴 시골 마을 양지바른 언덕에 배나무 과수원집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그 집의 예쁜 딸을 배꽃각시라 불렀다네 그녀의 얼굴은 배꽃처럼 하얗고 그녀의 마음이 배꽃향기처럼 고왔기 때문이지 배꽃이 피면 그녀는 나비처럼 과수원을 훨훨 날아 다녔다네 지금 그 과수원집은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배꽃이 피면 배꽃각시가 몰래 와서 과수원을 지킨다고 믿는다네 그 과수원의 배꽃이 저렇게 희고 그 과수원의 배가 이렇게 달고 시원한 것을 보면 배꽃각시가 오는 것이 틀림없다고 그렇게 믿는다네 2020. 7. 8.
덤/최규학 덤 최규학 덤으로 주는 과일은 그냥 과일이 아니다 조가비가 아픔을 견디고 토해내는 진주이다 덤을 주는 마음은 그냥 마음이 아니다 뜨거운 여름날 꾀꼬리가 푸른 숲에서 부르는 사랑가이다 과일을 덤으로 받으면 덤인 줄 알고 고마워하지만 수명을 덤으로 받으면 덤인 줄 모르고 고마워하지 않는다 지금 살아 있다면 무조건 감사하라 지금 살아 있는 것이 덤일지 모른다 덤으로 받은 생명은 벌이라 생각하면 벌이 되고 은총이라 생각하면 은총이 되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살아 있다면 덤이려니 생각하고 무조건 감사하라 2020. 7. 3.
앵두 / 최규학 앵두 최규학 누가 앵두에 입 맞출 수 있으랴 앵두만이 앵두에 입 맞출 수 있다 앵두처럼 곱고 순결한 입술을 가진 자만이 앵두에 입 맞출 수 있다 누가 앵두를 딸 수 있으랴 앵두만이 앵두를 딸 수 있다 앵두처럼 곱고 순결한 손을 가진 자만이 앵두를 딸 수 있다 누가 푸른 커튼을 열고 붉은 진주를 가질 수 있으랴 진주조개의 눈물을 아는 자만이 진주를 가질 수 있듯 앵두가 피눈물인 줄 아는 자만이 앵두를 가질 수 있다 2020. 6. 26.
꽃이 되면 / 최규학 꽃이 되면 최규학 내가 만약 꽃이 되면 봄에는 하얗지도 빨갛지도 않은 분홍색 살구꽃이 되련다 고상하지도 요염하지도 않은 분홍색 살구꽃 되어 네 가슴에 피련다 내가 만약 꽃이 되면 여름에는 하얗지도 빨갛지도 않은 꿀단지 밤꽃이 되련다 밀어내지도 찌르지도 않는 꿀단지 밤꽃 되어 너에게 꿀 사랑 주련다 내가 만약 꽃이 되면 가을에는 하얗지도 빨갛지도 않은 노란 해바라기 꽃이 되련다 쓸슬하지도 애처롭지도 않은 노란 해바라기 꽃 되어 너만 바라보련다 내가 만약 꽃이 되면 겨울에는 하얗지도 빨갛지도 않은 황금색 이불 꽃이 되련다 차갑지도 허무하지도 않은 황금색 이불 꽃 되어 밤마다 너의 배 위에서 피련다 2020.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