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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397

엄마의 눈빛 엄마 눈빛 최규학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빛은 엄마 눈빛이다 아기가 맨 처음 본 엄마 눈빛은 다이아몬드에 새겨진 하트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생에 어두움이 닥치면 그 눈빛이 북극성처럼 나타나 길을 밝힌다 바르지 못한 길을 가려 할 때도 그 눈빛이 하얗게 나타나 바른길로 인도한다 사랑의 눈빛은 벌침처럼 가슴을 찔러 붓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부기가 가라앉는다 다른 침에 쏘이면 해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마 눈빛은 번개처럼 짧은 순간 아기 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도 시간이 가도 그 어떤 다른 눈빛이 들어와도 약해지지 않는다 밤하늘에 새겨진 별빛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죽는 날까지 그 눈 속에 새겨져 있다 2020. 11. 27.
소나무 옆에서 / 최규학 소나무 옆에 최규학 소나무 옆에 소나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나무 옆에 자작나무도 있습니다 소나무 옆에 자작나무가 있으면 자작나무의 하이얀 살이 더욱 눈부십니다 소나무의 검붉은 근육도 더욱 돋보입니다 소나무 옆에 참나무도 있습니다 소나무 옆에 참나무가 있으면 참나무의 단풍든 얼굴이 더욱 예쁩니다 소나무의 푸르른 얼굴도 더욱 드러납니다 소나무 같은 사람 옆에 자작나무 같은 사람 있으면 사시장철 서로 돋보입니다 소나무 같은 사람 옆에 참나무 같은 사람 있으면 철 따라 서로 드러납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존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자신도 돋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소나무 옆에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함께 있는 모습이 저렇게 아름답습니다 2020. 11. 21.
밥 한 사발 밥 한 사발 최규학 밥 한 사발 먹기 위해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손길이 필요하다 쌀 한 톨이 나오기까지 팔십팔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시금치가 반찬이 되기 위해서는 천지가 수없이 개벽해야 한다 고등어 한 마리가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주여행보다 더 먼 여정을 거쳐야한다 밥 짓는 이의 정성은 또 얼마나 갸륵한가 누구는 가슴으로 밥을 짓는다 누구는 눈물로 밥을 짓는다 그러기에 밥 한 사발은 밥이 아니라 누구의 가슴이요 누구의 눈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밥상을 뒤집어엎은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의 화신이었으리라 소문에 의하면 평생 밥상을 받기만 하고 한 번도 차려주지 않은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마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밥 한 사발 먹는 일보다 더.. 2020. 11. 13.
가을 칸타타 / 최규학 가을 칸타타 최규학 가을에는 가을을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낙엽을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잎이 떨어진 늙은 홍시의 영화가 얼마나 쓸쓸한지를 아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고 싶다 가을에는 철새를 닮은 사람과 친하고 싶다 철새처럼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을 따라가고 싶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기차의 창가에 앉아 함께 차창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 가을에는 시를 읽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가을에는 과일이 익지만 잎이 떨어진다 하늘은 높아지지만 물은 얕아진다 그래서 가을은 영화롭지만 쓸쓸한 계절이다 시를 읽으며 마음을 비울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가을에는 나 자신이 가을이 되고 싶다 옷을 벗고 찬바람을 기다리는 가을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을 나무는 가장 아름다울 때 옷을.. 2020.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