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실홍실
최규학
외삼촌께서 한 조각구름 되어
어머니가 계시는 백운향(白雲鄕)에 가셨다
겨우 인생 팔십인데 붙잡는 인연보다
기다리는 인연이 더 좋았나 보다
세상살이 험난하여
봄가을은 짧고 여름과 겨울은 길었다
술 없이 어찌 그 혹독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으랴
술로는 이태백이요 행실은 공자님이었으니
풍양 조 씨 가문에 그만한 인물도 흔하지 않으리라
외삼촌 결혼식 때 청실홍실 묶는 것을 보았는데
외삼촌 장례식 때 청실홍실 푸는 것을 보는구나!
결혼식 때 본 청실홍실은 아침노을 같았는데
장례식 때 보는 청실홍실은 저녁노을 같구나
이승의 저녁노을이 저승에서는 아침노을이겠지
오십여 성상을 청실홍실 엮어서 아들 손자며느리
다 짜 놓았으니 무슨 한 남았으랴
다만 고향 뒷산에서 소쩍새 우는 소리 들리거든
홀로 남은 홍실이 청실 그리워 우는 줄만 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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