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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반성문 / 최규학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0. 5. 25.

반성문

최규학

어릴 때는 반성문을 쓰기 싫었는데
이제는 자청해서 반성문을 쓴다
어릴 때는 매 대신 반성문을 썼는데
이제는 약 대신 반성문을 쓴다
반성문을 쓰고 나면 마음이 후련하다
어릴 때 토끼몰이했던 것을 반성한다
선생님은 장군 우리들은 졸병이었다
학교 뒷산을 포위하고 함성을 질렀다
토벌대처럼 포위망을 좁히면
어린 토끼들은 도망가다 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른 토끼들도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잡혔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은 수호지의 송강처럼 토끼들을 때려죽였다
선생님들은 토끼탕 고기 안주로 축배를 들고
우리들은 국물에 밥을 먹으며 승리감에 도취했다
새끼 토끼들이 얼마나 놀랐으랴
부모 토끼들이 얼마나 슬펐으랴
토끼 가족에게 용서를 빈다
세상에 나와보니 나도 토끼다
토끼의 빨간 눈이 슬프다
사람의 빨간 눈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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