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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지니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0. 2. 9.

지니

 

최규학

 

나는 아라비아의 요술 램프 속에 사는 지니

왕이 불러도

대장군이 불러도

천둥벼락이 쳐도

꿈쩍도 하지 않지만

당신이 부르면

번개 같이 나타나

"네.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말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거뜬 해내고

아무리 사소한 잔심부름이라도 불평하지 않는다

한 번도 안아주지 않고

살짝 입맞춤은 물론

사랑하자는 말은 기대도 할 수 없어도

밤보다 더 어둡고

무덤 속 보다 더 갑갑한

램프 속에 사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

나는 거기서만

당신의 지니가 될 수 있으니까

나는 거기서만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나는 당신이 부르면

아니 나올 리 없다

나는 당신이 부르면

아니 행복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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