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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꽃의 철학(1)-인간과 꽃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7. 4. 18.

꽃의 철학(1)-인간과 꽃

 칼럼위원 최규학

 

사시사철 여기저기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다. 봄꽃은 대개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기 때문에 더욱 화사하고, 여름 꽃은 푸른 잎과 대비되어 더욱 드러나고, 가을꽃은 쓸쓸한 날씨를 이길 만큼 빼어나다. 색깔도 다양하고 모양도 예쁘고 향기도 좋다. 노오란 개나리, 연분홍 진달래, 하이얀 벚꽃, 뿌우연 연꽃,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그윽한 국화, 애잔한 동백꽃, 품위 있는 매화 등등 꽃들은 서열을 정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최고의 미를 가졌다. 꽃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요 좋아함의 극치이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꽃을 아름답게 느끼고 사랑하게 된다.

 

꽃을 사랑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낮은 단계는 그냥 꽃을 바라보고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를 즐기는 단계이다. 높은 단계는 꽃을 아끼고 돌보는 단계이다.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는 꽃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단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장미를 좋아해서 집안 가득 장미 분재와 장미 꽃꽂이를 해 놓는다고 하더라도 장미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진정 장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꽃을 사랑하는 데는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나는 언젠가 인간과 꽃의 만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인간과 꽃의 만남에 대한 철학적 아이러니를 다음과 같이 시로 표현해 보았다.

 

 꽃의 철학 / 인간낙파 최규학

인간을 만나기 전까지

꽃은 외로웠는지 모른다.

바람은 그냥 스쳐가고

벌과 나비는 제 실속만 차릴 뿐

아무도 아름답다거나

향기가 좋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그냥 피고 지는 것이

무의미 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인간이

꽃에게 다가와

아름답다고 말해주었을 때

향기가 너무 좋다고 말했을 때

꽃은 비로소 행복을 느꼈을지 모른다.

더구나 벌레를 잡아주고

물로 갈증을 잊게 해주었을 때

꽃은 외로움을 잊고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꽃이 시들어갈 때

추하다고 모욕하고

꽃이 보잘 것 없다거나

향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짜증낼 것이라고는

 

인간 마음대로

꽃을 변형하고

억지로 번식시키고

꽃이 피자마자

목을 잘라 꽃다발을 만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꽃은 웃고 있다.

벌레에게 처음 얼굴을 뜯겼을 때

웃었던 것처럼

 

꽃은 인간을 만난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 꽃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을 만나고서 꽃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개 장미 꽃다발을 선물한다. 장미꽃 향기를 맡으면 긴장이 완화되고 행복감을 높이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침실에 장미꽃을 깔았고, 마릴린 먼로가 잠옷에 장미향이 조합된 향수를 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장미 꽃다발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목 잘린 장미들이다. 목 잘린 장미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목 잘린 장미도 좋은 향기를 품어줄까? 그래서 나는 아내 생일날 책을 한 권사서 속표지에다 꽃을 그려 선물한다. 나비가 있고 줄기와 잎이 있고 뿌리까지 있는 꽃을 그린다. 그리고 꽃 옆에 이렇게 쓴다. “향기 있는 꽃 외롭지 않은 꽃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그러면 아내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덧붙여 써놓는다. “당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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