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벌
최규학
나는 잡벌이다
말벌도 아니고 꿀벌도 아니고
오빠시도 아닌
이름 없는 잡벌이다
장미꽃 아카시아꽃 밤꽃에는
얼씬도 못 하고
이름 없는 들꽃을 찾아 헤맨다
하늘의 지배자 말벌을 피하고
꿀벌 군대의 눈치를 보고
사나운 오빠시에 떨어져
매정한 바람에까지 밀린 다음
이곳저곳 헤매다가
잘 난 것도 없고
잘 난 체도 않는
돌멩이 하나 울타리 삼아 피어난
들꽃의 품에 안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광야의 순례자
잡벌이다.
[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