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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우리 동네 팽나무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2. 1. 31.

우리 동네 팽나무

최규학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우리 동네 팽나무는
우리 동네에서 바위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가장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도 팽나무에 올라가 놀았고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팽나무 아래에서 놀았다.
우리 동네 팽나무가 볼 때
동네 사람 모두가 어린아이다
우리 동네 팽나무는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늘과 함께 다 보았다.
흥부네가 부자가 되고
놀부네가 가난해지는 것도 보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더 강한 사랑과
오 부차의 와신과 월 구천의 상담보다
더 강한 미움도 보았다.
알을 깨고 아브락사스를 찾아가는 새처럼
마을을 떠나는 사람과
이몽룡처럼 금의환향하는 사람도 보았다.
우리 동네 팽나무가 볼 때 이런 것들은
모두가 한 조각 뜬구름이다.
우리 동네 팽나무가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식모살이하러 집 떠난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어린 손자가 팽나무 귀에다 대고
우리 할머니 언제 와?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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