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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밭 바위 / 최규학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0. 7. 13.
밭 바위

최규학

산자락이 남실대는 숲속 길가에
뻘건 황토밭이 출렁입니다
밭 가운데 까만 밭 바위가
할아버지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홀로 사는 꼬부랑 할머니가
공무원처럼 출퇴근 하며 일을 합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일한 흔적은 별로 나지 않습니다
평생 일을 해도 정년퇴직도 없습니다
할머니의 유일한 직장동료는 할아버지처럼 늙은
밭 바위뿐입니다
하루 종일 두런두런 업무협의를 합니다
밭 바위는 귀가 어두운지 불만인지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도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할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언제 부터인가 할머니는 일하러 밭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같은 밭 바위를 만나러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든든하게 앉아 있는 밭 바위가
꼭 할아버지 같습니다
밭에 오면 밭 바위가 있어
할머니는 외롭지 않습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일보다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옵니다
밭 바위 얼굴이 점점 더 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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