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회를 다녀와서
글/조성란
총동문회를 한다며 연락을 받아 온 지도 벌써 3년째입니다. 처음에는 웬 동문회 학교가 폐교되어 운동장도 없고 모임을 한다는 것은 좋았지만 난감했습니다
어느 날 어느 동문님의 상갓집에서 우연히 선 후배 몇몇 지인들이 모여, 합곡동문회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두말할 나위도 없이 "찬성입니다."라며 얼른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좋으면서도 반신반의 걱정이 더 많이 됐습니다 과연 내가 참석할 수 있을까? 다른 친구들의 반응을 어떨까? 지속적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이렇게 마음에 걱정하면서 창립 모임부터 참석, 지금은 합곡초등학교 동문회가 어느덧 3회를 맞이했습니다.
만나면 모두가 반갑고 잘 있어줘서 고맙고 그냥 좋고 마음이 편안해서 "마냥 좋습니다." 고향 선 후배를 만나면 포근하고 따뜻하고 정말 고향의 맛 그대로입니다.
충남 부여군 장암면 합곡리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가 세워졌었다는 것은 그 당시 인구가 많았고 교육률이 높았던 합곡리 3개 마을, 한 집에 학생이 보통 3~4명이 함께 학교에 다녔고, 한가족의 자녀가 모두 동문인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하는 일도 있고, 어떤 경우 서로 이해타산을 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너는 잘났네! 못났네, 성공했네! 못했네 하면서 혼자 자격지심에 참석을 못하는 친구도 있으리라 봅니다.
합곡초 동문회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네 것 내 것 가리고, 잘났네 못났네를 가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저 살아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보여줌으로 해서 다른 사람에겐 기쁨이고 행복 일 겁니다. 앞으로 이날을 합곡인의 잔칫날로 기억되도록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문회날을 합곡인의 잔칫날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학교가 없어 고향 마을에서 못하고 부여 강가 굿드레벌판에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르겠습니다 동네 학교가 있었더라면 마을 잔치 겸 가을 운동회를 열어서 온 가족이 함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혹시 다음 해에는 고향 마을회관 아니면 동네 뒤부뚝이라도 잡아서 하면 어떨까 하는 억지를 부려 봐야겠습니다.
가을소풍 가는 기분으로 가을 운동회 하는 기분으로 알밤도 삶고 계란도 삶아서 도란도란 이웃들과 모두 모여 인사도 나누고 그동안 못 찾아뵈었던 어른들도 덕분에 인사도 드릴 겸 해서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과 함께 게임도 하고 흥겨운 풍악도 울리고, 그야말로 시골 마을에서 "추억의 가을 운동회"를 꼭 한번 펼쳐보고 싶습니다.
1960년대 그 어느 집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거듭되는 흉년에 가난하고 어렵던 농촌마을에 어린 시절, 누구네 집은 어떻고 옆집에 수저, 젓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고 네 일 내일 가리지 않고 서로 보듬으며 거둬주고 오순도순 정 많던 아름다운 내 고향마을입니다 인심 좋고 정 많은 동네에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오랜만에 만나도 낯설지 않고 금방 헤어진 부모 형제처럼 반갑고 사랑스럽습니다.
이런 게 모두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 뻘거숭이로 함께 자라온 형제처럼 보이지 않게 情이란 나이테가 고운 추억으로 하나하나 쌓여 그리움과 행복을 간간이 선사합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기분 좋아지고 만나면 반갑고 헤어질 때 서운하고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어 새록 새록 그리워지고 어쩌면 이게 다~ 한 교실에서 형제, 자매 같은 분위기 속에 6년을 함께 해 온 덕이 아닐까 합니다 어찌 보면 합곡리가 고향이라는 게 행복하고 이렇게 좋은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것 또한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행운아입니다.
우리 합곡인은 오래동안 읶힌 묶은 지 같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곰국 같은 진국들입니다.
합곡을 사랑하는 동문님들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받아줘서 "고맙습니다"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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