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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본동이야기]/[수도권]우리동네 옛이야기

[수도권][우리동네 옛 이야기] [46] 중랑구 묵동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0. 10. 28.

[우리동네 옛 이야기] [46] 중랑구 묵동

[수도권] [우리동네 옛이야기] 먹 만들던 먹골… 배밭으로도 유명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발길 예놋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1441~1457)을 강원도 영월까지 호송하고, 왕명대로 사약을 건넨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은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괴로운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후 관직을 그만둔 왕방연이 자리를 잡고 세월을 보낸 곳이 바로 봉화산 아래 '먹골', 지금의 중랑구 묵동(墨洞)이다.

'먹골' 또는 '먹굴'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서 먹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다. 인근 봉화산 소나무 참숯으로 만든 먹은 품질이 좋아 궁중에 진상했다고 한다.

이곳은 달고 맛있는 '먹골배'의 주산지인데, 금부도사 왕방연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왕방연은 배나무를 키웠는데, 단종이 승하한 날이 되면 자신이 수확한 배를 한 바구니 가득 담아놓고 단종이 세상을 떠난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이후 왕방연이 심었던 배나무는 신내동, 중화동, 상봉동 등지로 펴져 이 일대에 대규모 배밭이 형성됐다.

옛날 묵동 주변 노원구 월계동은 마을에 벼루 모양의 큰 연못이 있어 '벼루말' 또는 '연촌'(硯村)이라 불렸고, 월계동 바로 옆인 노원구 하계동은 '붓골'이라고 했다. 이 두 지역과 묵동을 연결하면 삼각형 모양이 되는데, 이 안에서 훌륭한 인재들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 때 이 삼각형 안에 있는 노원구 공릉동에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가 세워져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