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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본동이야기]/[수도권]우리동네 옛이야기

[수도권][우리동네 옛 이야기] [30] 중구 장충동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0. 4. 27.

[우리동네 옛 이야기] [30] 중구 장충동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충신, 장충단에 모셔

 

"남산 밑에 지은 장충단 저 집 나라 위해 몸바친 신령 뫼시네/ 태산 같은 의리에 목숨 보기를 터럭같이 하도다/ 장한 그분네."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하여 애창된 '한양가(漢陽歌)'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구 장충동(奬忠洞)이라는 동명은 구(舊)한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된 장충단(奬忠壇)에서 유래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1895년 고종(高宗)의 비(妃) 명성황후(明成皇后)가 경복궁에서 일본인에 의해 시해되던 때 시위대장 홍계훈 등 많은 장병이 일본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다. 고종은 1900년 11월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사당인 장충단을 짓고 비(碑)를 세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때는 죽은 충신들의 제사도 모셨다. 사당은 6·25전쟁 때 파손되었지만, 비는 1969년 장충동 2가 197번지로 옮겨져 보존하고 있다. 1930년대 일본은 이곳에 이토 히로부미의 공적을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라는 절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8·15 광복 뒤 철거됐다.

장충단 공원도 1919년 일제가 조성했다. 김두환이 야쿠자와 벌인 장충단 공원 혈투는 지금까지 '전설'로 남아 있다. 1963년 세워진 장충체육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경기장으로, 큰 경기가 열릴 때면 인근 돼지족발거리도 붐볐다. 중구는 지난달 장충체육관 앞 사거리에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리는 '독도 홍보판'을 설치했다. 장충단에 모셔졌던 열사들이 들으면 기뻐할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