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차·채소·과일 등 다루던 관청이 있던 곳
무심코 부르는 동네 이름에도 알고 보면 서울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지명 속에 감춰진 옛 사람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면 지금 우리의 삶터도 새롭게 보인다. 시리즈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통해 어제의 역사로 오늘을 비춰보는 구수한 이야기를 풀어내 본다.
"그의 향기롭고 보들보들한 두 팔이 나의 목을 감고 있었다… '다옥정 ○○번지. 우선 이 번지를 잊지 마셔요.'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소설가 현진건은 1922년 발표한 단편 '타락자'에서 주인공이 기생 '춘심'과 사랑에 빠지는 대목을 이렇게 그렸다. 여기 나오는 '다옥정'이 바로 지금 한국프레스센터 뒤편, 무교동과 길 하나를 맞댄 중구 다동(茶洞)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쓸 차·채소·과일 등을 다루던 관청인 사옹원의 다방(茶房)이 있어 '다방골' '다동계'라 불리기 시작했다. 한성부 남부 광통방에 속했는데 '다방골'을 한자로 옮겨 '다방(多坊)'이라고도 표기했다. 조선의 여(女)형사로 알려진 '다모(茶母)'는 본래 여기서 차를 끓이던 여성들이었다는 설도 있다. 일제시대엔 일본식으로 '다옥정(茶屋町)'이라 불렸다.
전설에 따르면 다동 일대는 지형이 1000년을 사는 거북 모양이라 온갖 재난에도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 부유한 상인들이 주로 살았고, 기생도 많아 일제 때 '다동 권번(券番·기생조합)'이 유명했다. 1937년 소설가 이태준이 발표한 단편 '복덕방'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돈은 흔해져서 관철동, 다옥정 같은 중앙지대에는 그리 고옥(古屋)만 아니면 1만원대를 예사로 훌훌 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무용 빌딩이 많고 '먹자골목'이 있는 상업중심지다. 카페가 흔하니 다방골 명성은 여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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