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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대통(행운)]/남는얘기

[불상 감상법]①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불상이다. 즉 인간은 불상이 표현...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8. 9. 30.

 

①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불상이다. 즉 인간은 불상이 표현하는 불력에 의해 구제를 받는다. 절대귀의 감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대작이 만들어진다.

② 자력적인 상이다. 불상을 보는 자는 불상이 지닌 불심을 자기 마음으로 한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불상을 믿고 있으면 자신이 불심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불상은 되도록 작게 만든다.

 이렇게 고려시대의 불상조성 기법이 퇴화된 원인은 우선 선종의 영향으로 보인다. 선종은 불상에 대한 예배보다는 조사의 언행을 따르고 선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중시되었으므로 불상에 대한 의욕이 쇠퇴된 것이다. 이 시기 불상의 특징은 눈꼬리가 길게 옆으로 돌아가고 입은 괴상하게 표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상의 미학적 측면에서 보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퇴화현상이지만 선종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시도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고려 불교의 대중성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고려의 불교는 일부 출가자에 의한 선종이 유행하긴 했으나 전체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신앙의례가 성행하였다. 즉 수행의 의미보다는 절대귀의 감정의 대상으로서 또는 예배의 대상으로서 불상을 숭배하므로 대작을 만든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후기에는 라마교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양식이 시도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고려왕조를 건설한 왕건은 왕조의 건국이 불력에 의하였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사원의 난립을 엄히 경계하였으나 신왕조의 건립에 따르는 신흥의 기운은 많은 사원의 건립은 물론 거대한 탑파와 불상의 조영을 촉진하였다. 관촉사의 석불이나 현화사의 석탑은 그 일례라고 하겠다. 그러나 신흥의 의기는 정신과 기술이 수반되지 못해 우수작을 만들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고려 시대에 들어 더욱 유행한 선종(禪宗)의 영향이 컸으니 불상에 대한 예배보다는 선사(先師)의 언행을 따르고 사색을 통해 돈오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였으므로 불상조각에 대한 의욕상실 내지는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어 정신면에서 퇴보하였고 표현 능력도 따라서 감퇴된 때문이었다.

  불상의 양식은 대체로 신라 불상의 양식을 계승하였으나 삼국시대의 신비성이나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을 향하는 깊이 내재한 성격은없어지고 현세의 인간을 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나타나지만 그 미소는 삼국시대의 미소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되었다.

  불상조각 쇠퇴의 또 하나의 원인은 풍수도참(風水圖讖)사상의 습합을 들 수 있다. 풍수설은 신라 말기부터 수용되어서 석탑과 석불의 점지(占地)에 작용한 흔적이 있으나 고려가 되면서 더욱 성행하여 조성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또하나 주목되는 점은 고려말기에 몽고 세력의 침투로 라마불상의 양식이 도입된 사실이다. 몇몇 주목할 만한 금동상이 전래되고 있으나 석불에서는 그다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4)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이른바 억불숭유(抑佛崇儒) 의 정책과 함께 국가적인 후원이 줄어들어 불상은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고려 불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나 차츰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토착적인 성격이 강해지면서 주로 개인의 행복이나 내세를 위해 소규모의 불상 제작과 개인용의 불감(佛龕), 목각탱등이 만들어졌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위축되었으나 자취를 감춘것은 아니었다. 즉 사회적으로 공인이 되지 않았을 뿐 개인적으로는 왕실에서 서민까지 신앙행위를 해 왔다. 대신 공인이 되지 않은 탓에 사회사상과는 직결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불상은 형식적으로 아름답지 못하였고 깊이도 없었다. 예배의 대상도 존귀한 대상도 아니고 단지 예의와 형식으로서 갗추어지는 조형물이었다.

조선시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인체의 파악이 부족

② 측면관에서 등이 앞으로 굽고 턱을 내밀고 있음

③ 개성적이지 못한 얼굴

④ 법의는 두텁고 인체의 표현이 없음

⑤ 의문은 사실적이지 못한고 형식적

⑥ 세속화 된 경향이 농후

예술적 아름다움이나 창조적 양식은 사라지고,형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는 불상이 조각됨.

형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는 불상이 조각됨

← 배불정책으로 불교가 사회적인 의미를 잃음

← 세속화되고 형식화 됨

이것은 정신과 기법이 동시에 퇴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려시대의 퇴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고려시대에는 그나마 개성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