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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金鍾鎭先生長逝 二首/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1. 7. 4.
金鍾鎭先生長逝 二首
김종진 선생이 아주 가시다

到夕耕鋤種菜田
遇余靑眼話連連
嗚呼一旦良緣絶
奔走白雲暫不牽

里仁爲美詣門前
家況重沈眞可憐
分手病妻何急去
籬邊花木失其姸

저물녘까지 호미질하며
채마밭 가꾸시다가
나를 만나면 반가워하며
계속 이야기 꽃 피웠네
오호라 하루 아침에
좋은 인연이 끊어지다니
내달리는 흰 구름
잠시도 만류할 수 없구나

어진 분 이웃에 사는 게 좋아
문앞으로 찾아가곤 했었지
집안 사정이 무겁게 가라앉아
참으로 가엾기 그지없었지
병든 아내의 손을 놓고
어찌 그리 급히 떠나셨을까
울타리 가의 꽃나무들도
어여쁜 모습을 잃었구나

[해설]
부여고등학교에서 윤리 교사로 재직했던 김종진(1962∼ ) 선생님이 우리 마을에 집을 짓고 옮겨오신 지 4년쯤 되는 것 같다. 부인께서 불치병을 앓고 있어서, 정년을 몇 년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하였다 한다. 앞으로 살 날이 많지 않은 부인을 위해 간병하기로 작정하고 들어오신 듯하다. 김 선생님은 마을 분들과 친해지려고 늘 노력을 하였다. 집 뒤에 3백 평 가량의 빈 땅을 빌어 갖은 채소를 심어 지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산책 겸해서 마을을 한 바퀴 돌때마다 그 밭 앞을 지나곤 하는데, 어김없이 채소를 한 보따리 챙겨준다. 상추⋅가지⋅오이⋅호박⋅치커리 등 다 늘어놓을 수가 없다. 3주 전인가 만났을 때는 “올해 옥수수를 많이 심었습니다. 이거 잘 익으면 교수님과 나누어 먹고 싶습니다”면서, 즐겁게 웃었다. 체격이 좋고 미남이신 분. 인격 또한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분이다. 그런데 지난 6월 27일, 갑자기 고혈압으로 손쓸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 한다. 아아, 정말 어이가 없다. 말문이 막힌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남편의 도움 없이는 살기가 어려운 부인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할수록 목이 멘다. 좋은 사람 빨리 데려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인가? 어제 오늘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잘 가시오. 좋은 사람!!! (下平聲 先韻, 2021. 6. 29)

<감상평>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조침문(弔針文)이란 선조 때 유씨부인의 수필을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고 성인이 되어서는 허난설헌의 곡자(哭子)를 읽고 깊은 슬픔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 백사의 시 <김종진 선생 장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함께 하였습니다.
백사는 김종진선생과 같은 마을에 사는 것으로 그를 알고, 저는 김종진 선생과 부여고등학교 동문이며 부여여고에서 제가 2학년 6반 담임 김선생이 1반 담임으로, 부여고등학교에서는 제가 1학년 부장과 김선생이 9반 담임교사로 함께 했고, 몇 년 전에는 제가 부여고 교장 할 때 김선생이 수석교사로 근무하여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김선생은 모범교사 중의 모범교사로 저는 물론이려니와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분이었습니다. 교사일지를 쓰고 수석교사 시에는 자비로 학습동아리를 운영하고 제가 부여고 10경을 부탁드렸더니 힘들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학생들과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10경을 선정하고 자비로 멋진 책까지 제작하였습니다. 부인이 희귀병인 림프암에 걸려 최대 10년 수명이라 걱정하며 병 수발을 위해 명예퇴직하고 요양보호사 자격까지 취득하였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교육자요 남편이었던 김종진 선생의 요절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하늘은 정말 착한 사람의 편인가? 라는 의문을 가졌던 것과 같은 심정입니다. 백사가 짧은 기간의 만남에도 이와 같은 애도시를 쓰신 것 자체가 김종진 선생의 고매한 인품을 말해준다 생각합니다.
도석경서종채전(到夕耕鋤種菜田) “저물녘까지 호미질하며 채마밭 가꾸시다가”에서 경서(耕鋤)는 호미로 경지를 갈아엎는 작업을 말합니다. 백사가 본 김종진선생의 평소 모습을 풍경화처럼 읊은 것입니다. 여기서 도석(到夕)이 의미의 중심이 됩니다. 정말 일이 많아서인지 무엇을 잊으려 한 것인지 화두를 던진 것입니다.
우며청안화연연(遇余靑眼話連連) “나를 만나면 반가워하며 계속 이야기 꽃 피웠네”에서 청안(靑眼)은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을 말합니다. 반면에 백안(白眼)은 눈의 흰자위가 나오도록 업신여기거나 흘겨보는 눈입니다. 이는 완적청안(阮籍靑眼) 고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진(晉) 나라 완적이 본디 법도 있는 선비를 미워하여 자기 어머니 초상을 당했을 때, 혜희(嵇喜)가 예의를 갖추어 조문하자 그것이 못마땅하여 눈을 희게 뜨더니, 혜강(嵇康)이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가자 그제야 좋아하여 눈을 푸르게 떴다는 고사입니다.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에 전합니다. 백사는 김종진선생이 세상을 보는 두 가지 눈 중에 청안의 소유자였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호일단양연절(嗚呼一旦良緣絶) “오호라 하루 아침에 좋은 인연이 끊어지다니” 는 김선생이 요절을 보고 인생무상을 한탄한 것입니다.
분주백운잠불견(奔走白雲暫不牽) “내달리는 흰 구름 잠시도 만류할 수 없구나” 는 백사가 김선생의 사망에 대한 심안과 영안의 단계로 본 절창입니다. 이는 고려말 함허 득통화상(1376-1433)의 게송과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의 절명시로 알려진 生也一片 浮雲起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 浮雲滅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와 같은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인위미예문전(里仁爲美詣門前) “어진 분 이웃에 사는 게 좋아 문앞으로 찾아가곤 했었지”는 김선생의 고매한 인품을 표현한 절창입니다. 이는 <논어> 이인편 1장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里仁爲美 어진 마을이 아름다우니 擇不處仁 어질지 못한 마을을 선택하면 焉得知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예문전(詣門前)에서 예(詣)는 도착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백사가 참배하는 심정으로 김선생댁을 찾아가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가황중침진가련(家況重沈眞可憐) “집안 사정이 무겁게 가라앉아 참으로 가엾기 그지없었지”는 김선생 집안의 가련한 사정을 말한 것입니다. 가련(可憐)은 한산(寒山)의 시 可憐 清江裡 “맑게 흐르는 강 안쪽이 가련하구나”, 김삿갓의 가련기시(可憐妓詩) 風蕭音斷月茫茫 “바람 소리 소소하고 그대 음성 들을 길 없는데 달빛만이 망망하구나”, 가 떠올라 감정이입을 일으킵니다. 신중현 선생이 1997년에 만들어 부른 노래 ‘가련기시’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분수병처하급거(分手病妻何急去) “병든 아내의 손을 놓고 어찌 그리 급히 떠나셨을까”에서 분수(分手)는 이별한다는 뜻입니다. 병처(病妻)는 김종진 선생의 부인이 위중한 림프암 환자인 것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에서 슬픔의 고조가 일어납니다.
리변화목실기연(籬邊花木失其姸) “울타리 가의 꽃나무들도 어여쁜 모습을 잃었구나”에서 리(籬)는 울타리를 말합니다. 연(姸)은 예쁘다는 뜻입니다. 김종진 선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 슬퍼서 집 울타리의 화목들도 슬픔에 젖게 할 정도라는 백사의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이는 애도시의 백미로 슬픔을 은유한 아주 탁월한 시문입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는 누구든 잠시 실기연(失其姸) 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모든 아름다움을 잃고 애로라지 슬픔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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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대 최영성 교수님 시에 제가 감상평을 붙였습니다. 김종진 선생님이 60도 안되어 병든 아내를 두고 저세상으로 떠난 것을 슬퍼하는 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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