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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미운 정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1. 6. 5.
미운 정

최규학

사랑이 샘이라면 정은 호수이다
사랑이 실이라면 정은 고운 정을 씨줄로 미운 정을 날줄로 엮은
옷감이다
사랑은 하는 것이지만 정은 드는 것이다
죽도록 사랑하는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한 번 든 정은 가시지 않는다
고운 정이 단맛이라면
미운 정은 시고, 떫고 짜고, 맵고, 쓴맛이다
고운 정이 꿀맛이라면
미운 정은 탱자 맛, 땡감 맛, 소금 맛, 고추 맛, 소태맛이다
고운 정이 칭찬, 부드러운 말, 따뜻한 눈빛에서 든다면
미운 정은 질책, 거친 말, 차가운 눈빛에서 든다
미운 정은 두리안처럼 처음에는 싫지만 나중에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깊은 맛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고운 정의 웃음보다 미운 정의 눈물로
이루어지는 바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져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지 못한다면 미운 정이 든 것이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싫지 않다면
미운 정이 든 것이다
고운 정은 끊어낼 수 있어도 미운 정은 끊어 낼 수 없다
지긋지긋해서 미운 정을 끊어 보면 알리라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