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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MBN〈我是自然人〉視聽后 (絶句)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1. 2. 2.

MBN〈我是自然人〉視聽后 (絶句)

逃世隱居勝接人
一朝奄爲葛天民
寥寥獨在雲中老
長對靑山無俗塵

MBN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고

도피하여 숨어 사는 게
사람 만나는 것보다 낫더니
하루 아침에 문득
갈천씨 백성이 되었구나

적막하게 홀로
구름 속에서 늙어가는데
푸른 산 오래 대하더니
속진을 다 떨치셨네

㈜ 葛天: 중국 상고시대 전설적 제왕인 갈천씨를 가리킴.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한다. 도연명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갈천씨의 백성인가”라는 말이 보인다.

[해설]
연구자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시간이 얼마나 많을까마는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그것이다. 세속잡사에 시달리는 오십대 이상의 사람, 특히 남성들이 이 프로를 시청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말을 들었다. 나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당장 산으로 들어가 살 수는 없지만, 산에서 사는 사람을 보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소개되는 자연인의 입산 사연을 들어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마냥 산이 좋아서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병이 중하여 살기 위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사업에 망하거나 사기 등을 당하여 세속에 염증을 느낀 경우도 그에 못지않다. 이들은 처음에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다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야말로 천생 ‘산사람’이 된다. 거의 정해진 과정인 듯하다. 산 생활에 맛을 들이면 세상에 내려오기 어렵다 한다. 저들의 삶을 보면 요순시대(堯舜時代)의 백성이 따로없다. 그들의 삶이 부러울 때가 많다. 느낀 바 있어 절구 한 수를 주초(走草)한다. (上平聲 眞韻, 2021. 1. 28)


[감상] 최규학
꽃의 시인 김춘수는 시인이 느끼는 순간의 영감을 ‘마음의 들림’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백사가 MBN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고 착상된 순간의 이미지를 갈천씨와 청산을 데려와 말하게 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이는 허다할 것이나 이렇게 통찰하여 시로 쓴 사람은 백사가 유일할 듯합니다.

 

조선의 3대 천재 중 한 사람으로 거명되는 박제가는 하늘과 땅 사이에 시가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릴케는 ‘시인(詩人)은 시인(視人)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시인은 보통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전해주는 메신저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사는 진정한 시인(Dichter)이 아닌가 합니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사가 최치원의 후예로 유불선 삼교에 달통한 대학자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이 시는 언 듯 보면 도교적인 것 같지만 유불선 삼도가 버무려진 고농축 시입니다. 백사는 숨어있는 자연인을 찬양한 것이 아니고 TV에 출연한 참여하는 자연인 즉 최치원의 접화군생(接花群生)을 부각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입산 시 자연인의 심정은 백석의 시 의 한 구절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와도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도와 동화되어 산과 세상, 성속의 경계와 구별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 때 비로소 TV를 통해 입전수수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백사는 이 순간을 포착하여 다시 세상에 드러내는 시도(詩道)를 펼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접화군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 시의 핵심어는 갈천민(葛天民)입니다. TV에 출연한 자연인이 바로 갈천민이고 이 세상도 그러하기를 염원하는 최치원과 백사의 포부가 담겼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몇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황홀감에 잠겼습니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좌망문답(坐忘問答)이 생각납니다. 이는 안회가 공자에게 깨달음의 단계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처음 인의를 잊고 다음 예악을 잊고 끝으로 좌망입니다. 안회가 말하기를 回坐忘矣 저는 앉은자리에서 고스란히 잊었습니다.”..何謂坐忘 “앉은자리에서 고스란히 잊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同於大通 대도에 동화되는 것을 말합니다...丘也請從而後也 내, 너의 뒤를 따르고 싶다.“ 백사는 자연인을 보면서 同於大通을 생각한 듯합니다.


이 시는 또한 십우도(十牛圖)를 떠오르게 합니다.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데 견성에 이르는 과정을 열 단계로 묘사한 그림으로 사찰의 벽에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송의 보명(普明)의 목우도(牧牛圖)와 곽암(廓庵)의 십우도(十牛圖)가 있습니다. 보명은 묵조선의 점오를 곽암은 간화선의 돈오를 지향합니다. 우리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곽암의 십우도는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入鄽垂手)의 과정입니다.

 

이 중 핵심은 마지막 입전수수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들어가 함께 어울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도가 아닌가 합니다. 자연인도 보명의 목우도처럼 자신의 구제에 목적을 두는 것보다 곽암의 십우도처럼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크다 하겠습니다. MBN에 출연한 자연인은 그 자체로 입전수수 단계에 진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를 베푸는 포대화상인 것입니다. 백사의 시의 핵심도 바로 이것입니다.


공자도 미자편 6장에서 입전수수의 도를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나라 은자 장저와 걸익과는 다른 차원의 깨달음 말한 것입니다. 夫子憮然曰鳥獸不可與同羣 부자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조수와는 무리를 같이하지 못하리니 吾非斯人之徒與 내가 이 사람의 무리와 더불지 않고 而誰與 누구와 더불겠는가? 天下有道 천하에 도가 있다면 丘不與易也 내 더불어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라.”


공자는 또한 공야장 1장에서와 같이 공야장을 사위로 삼았는데 공야장은 새와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야장은 자식을 잃고 슬피우는 여인에게 까마귀가 하는 말을 듣고 냇가에 가보라고 하여 가보니 아이가 죽어있었으므로 살인죄를 하옥되었다가 무죄방면 된 사람입니다. 공자는 공야장이 비록 하옥되었어도 죄가 없다며 이 자연인을 사위로 삼은 것입니다.


이 시는 또한 공자 이인편 8장에 나오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를 생각나게 합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는 것을 무슨 뜻일까요? 저는 여기서 도는 선왕지도(先王之道) 즉 주공의 도이고 석사가의는 세상에 주공의 도 즉 이상사회가 펼쳐지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사의 시도 이러한 꿈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충북 괴산에 가면 선경(仙境)인 갈은구곡(葛隱九曲)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당쟁을 피해 숨어들었던 곳이라 하는데 고종 때 통정 중군을 지낸 괴산 출신 선비 전덕호(全德浩)(1844-1922)가 명명한 것입니다. 이곳에 가면 다양한 서체의 한시(漢詩)가 곡마다 바위에 새겨 있는데, “동작갈천민(同作葛天民).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이 되고 싶구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백사 시의 백미이며 결론은 ”장대청산무속진(長對靑山無俗塵), 푸른 산 오래 대하더니 속진을 다 떨치셨네“입니다. 이는 직설적인 표현인 동작갈천민(同作葛天民)보다 고도로 조탁된 감동의 메타포입니다. 백사의 뜻대로 군생이 갈천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어려운 글 올리니 시간 되시는 분들 읽어 보세요
전통문화대 최영성교수님 시에 제가 감상평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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