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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절필[絶筆]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4. 10. 20.

절필[絶筆]

 

풍진 세상 잘못 나와

잘 풀린 일 하나 없고

험한 파도에 휩쓸릴까

돛단배처럼 겁을 냈네.

신통한 단약 만들었어도

시험해 볼 길은 없었고

청평검*(靑萍劍)을 얻었어도

끝내 숨겨 두었다네.

동해 바다 삼신산에서

벗이 오기를 기다리니

이제 나는 인간 세상을

구우일모(九牛一毛)로 하직하네.

표연히 여기를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엔

은대궐에 뜬구름은

만 길 높이 솟아있으리.

 

絶筆

誤出風塵百不遭(오출풍진백부조)

孤檣常怕惡波濤(고장상파악파도)

鍊成丹鼎何曾試(연성단정하증시)

斲掘靑萍竟自韜(착굴청평경자도)

海上應須三島侶(해상응수삼도려)

人間今落九牛毛(인간금락구우모)

飄然此去空明界(표연차거공명계)

銀闕浮雲萬丈高(은궐부운만장고)

 

*청평검: 명검의 이름.

조선 후기 문신 최성대(崔成大·1691 ~1762)의 절필시이다. 한 시대의 빼어난 시인답게 좌절과 불운의 한평생을 한 편의 시로 표현하고 떠났다. 이 세상에 온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고, 돛단배로 큰 바다 풍랑을 헤쳐가듯이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정성껏 빚어놓은 능력을 써볼 데도 없이 사장시킨 인생이었다. 내 고향은 선계(仙界)로, 선인(仙人)들이 왜 그렇게 사느냐며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제 떠나고 나면 세상과는 영영 인연을 잇고 싶지 않다. 누군들 되돌아보면 회한이 남지 않는 인생이겠는가마는 그래도 너무 처연하다.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한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