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하루 /(눈 많이 내리는 날 청계산 도전기)
오늘은 꿈인지 생시인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하루를 눈 속에서 보냈습니다.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
겨울산행을 해야겠다며
아이젠을 하나씩 장만을 했습니다.ㅎㅎㅎ
아이젠 덕분에 오늘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머리가 텅 빈 사람처럼
순간 바보가 되어버린 우리 부부
아이젠을 준비했다는 그 기분으로 겁 없이
자연한테 무례한 행동을 했습니다.
오후 1시쯤 눈이 내리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올라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이상하다 하면서
꾸역꾸역 올라갔습니다.
내려오는 사람만 간간이 몇 명 내려올 뿐 오르는 사람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눈이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마음깊이 새기지 못했습니다.
그냥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없지? 하고
의심만 했지 그다음은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저 눈을 맞으며 산에 올라가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맘뿐
다음에 어떤 상황이 일어날 거라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로 말입니다.
산 중턱을 올라가는 길, 시간의 개념도 없어지고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에
마치 내 그림자가 발밑에 깔려서
그림자를 밟으며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
그때 시간이 오후 3시쯤 더는 오르지 말고 내려와야 하는데도
둘이는 겁 없이 계속 오르기만 했습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산 중턱에 서서
웃으며 살을 꼬집어도 봤습니다.
산 정상 가까이 능선에 올라서니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가 사람을 날려 버릴 것 같은 기세에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기 시작을 한참
눈을 뜰 수도 없고 날은 춥고
길은 눈보라에 묻혀버리고 정말 무섭고 난감했습니다.
산에서 실종이라고 하던데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면 내려가는 길은 오던 길 반대 방향으로 짧은 코스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으윽!
"완전 착각" 정보 없이 무리한 산행이었다는 자책에 바보스러웠습니다.
그나저나
올라오던 길은 하도 험해서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고 어디 좋은 길이 없을까
이리저리 한 참 길을 찾다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오던 길로 되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었습니다.
조금 더 머물다가는 정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오던 길로 다시 발자국을 따라 내려가야겠다 맘먹고 내려오는데, 그 발자국마저 눈으로 덮여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누구한테 홀려서 이렇게 골짜기에서 헤매는지?
마치 도깨비한테 홀린 사람처럼
날씨도 험한데
날 굳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멧돼지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산짐승이 나와서 행패라도 부리면 어쩌나..
공포와 두려움에 몸이 오싹해 지면서 앞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은 빨리빨리를 외치는데 행동은 더뎠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안경에 입김도 서리고 눈을 맞아 젖기도 하고 답답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벗어서 가방에 넣고 내려오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뒹굴고를 4시간 이상
꾸역꾸역 내려오다 보니
어둑어둑 저녁을 알리고 반가운 넓은 길도 보였습니다.
근데 그 길은 서울대공원 철조망 뒷길
사람은 다닐 수 없는 통제구역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둘이 철조망을 넘어 대공원 안으로 해서 청계산탈출을 했습니다.
넓은 평지가 나타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
대낮에 도깨비한테 홀렸다 풀려난 느낌,
꿈에서 깬 것 같은 몽롱한 하루였습니다.
오랜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을 아무도 없는 청계산에서 남편과 둘이 실컷 맞아봤습니다.
이다음 내 인생 노트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길 기도하며...
다음부터는 "절대로 무리하게 자연에 도전하는 행동은 삼가 해야겠다."라는 교훈과 함께
눈이 오는 날 더 큰 산에 재도전 해봐야겠다는 자신감도 배웠습니다.
=201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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