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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본동이야기]/[수도권]우리동네 옛이야기

[수도권] "아이 손잡고 '동대문 歷史' 구경해 볼까?"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0. 4. 27.

동대문 낭만시장展
'책방' '골목길 채원' 등 4가지 테마공간 통해 시장의 과거·현재 한눈에

초록색 언덕 위에 한 여인네가 비스듬히 누워 있고, 옆에는 한 남정네가 그 여인을 사랑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작자 미상으로 1946년 나온 육전소설 '능나도'의 표지에 등장한 그림이다. 육전소설은 1910년부터 목판 인쇄를 통해 대량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가격이 6전으로 저렴해 서민층에게도 인기가 있어 '육전소설'이라 했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딱지처럼 표지가 울긋불긋하다 하여 '딱지본'이라고도 불렸다. 이런 옛날 책들은 서울시내의 가장 대표적인 헌책방 거리였던 동대문 헌책방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아무렇게나 진열된 책더미 속에서 발견되곤 했다.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자리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디자인갤러리에서 지난 12일 개막, 6월 말까지 열리는 '동대문 낭만시장전(展)'은 사라져 가는 동대문 시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동대문시장의 여러 모습을 담은 '책방' '골목길 채원' '동행' '동대문 사진관' 등 4가지 테마로 구성된 공간을 릴레이 형식으로 구성했다.

1905년 문을 연 동대문시장은 6·25전쟁과 1959년 대화재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서울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서울디자인재단은 "동대문시장의 문화적 원형과 미래상을 모색하기 위해 상인과 디자이너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전시로, 시장의 낭만과 아름다움, 흥겨움을 통해 시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대문 동화시장 내 방화문에 그려진 경비원 캐리커처(왼쪽).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디자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동대문 낭만시장 전(展)’을 찾은 시민들이 책장에 꽂힌 1920~1950년대 책들을 읽고 있는 모습(가운 데). 상점 이름을 수놓은 자수작품이 동화시장 벽면에 장식된 모습(오른쪽). / 연합뉴스·조선일보

전시의 첫 테마인 '책방'에서는 1970년대 이전 번성했던 동대문 헌책방을 재현해 문학에서 묘사되는 일상생활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헌책방 하면 대개 청계천을 떠올리지만 동대문이 원조다. 한때 40~50곳에 이르던 동대문 헌책방은 1970년대 도심 재개발로 문을 닫기 시작해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모두 없어졌다. 이곳에 있던 헌책방은 인근 청계천으로 자리를 옮겨 헌책방 거리를 형성했다.

전시회에는 까까머리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양장을 입은 신여성이 등장하는 '츈몽의 꽃'(1932년)을 비롯 '홍도야 울지마라'(1946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52년) 등 육전소설 30여권이 선보인다. 이광수의 '설산과 나', 김소월의 '기분 전환', 윤동주의 '돌아와 보는 밤' 등 친필 원고에서는 작가들의 채취를 느낄 수 있다. 송유림 작가는 육전소설 표지에서 영감을 받아 잊혀가는 우리 문학의 한 부분을 자수와 그림을 통해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두 번째 테마 '골목길 채원'(30일~5월 18일)에서는 작가 강은엽의 작품 '텃밭'이 전시된다. 어린 시절 대문을 열면 채송화와 금잔화가 있는 골목길과 텃밭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아파트가 생기면서 사라져 버렸다. 작가는 삭막하게 변해버린 현대 도시 안에서 예전 골목길과 텃밭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삶의 모습이 동대문시장에 다시 등장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세 번째 테마 '동행'(5월 20일~6월 9일)은 복잡한 도시 안에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은경 작가의 작품 '인간 속의 강아지'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표정 짓는 강아지를 통해 사람과 동물 간 교감을 보여준다.

네 번째 테마 '동대문 사진관'(6월 12~30일)에서는 동대문시장 안에서 찾은 다양한 가게들의 모습을 디자인 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 보여준다. 황지현 작가는 파란색·빨간색 실 뭉치에 구슬 달린 시침핀이 꽂혀 있는 작품 '동대문 재봉실'을 통해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들이 일당 70원을 받으며 일하던 풍경을 추억하고 있다. 김충 작가의 '창신동의 꿈'이란 작품에서는 동대문시장의 동맥이자 실핏줄인 창신동 봉제공장들의 화려함과 어둠을 붉은색과 검은색의 조합으로 풀어내고, 최형욱·이민희 작가의 '새벽시장과 사람들'은 나무 지게를 지고 새벽을 밝히는 사람들을 되살렸다.

전시회를 보고 동대문 동화시장을 한번 둘러보자.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원색의 줄무늬 벽화가 그려져 있고, 3층 벽면에는 상점 이름을 직접 수놓은 자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자판기 옆에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장난감이 달려 있어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는 노란 의자들이 놓여 있다.

서울시의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 중 하나로 2007년부터 공공미술가 10여명과 상인들이 공동 작업을 벌였다. 방화문에는 경비원과 상점 아주머니를 모델로 한 캐리커처를 우스꽝스럽게 그렸으며, 단추 모양 의자와 화려한 옷감을 닮은 바닥 그림도 구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