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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본동이야기]/[수도권2]지명유래

[수도권II] [우리동네 지명유래] [21] 파주 도라산(都羅山)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0. 3. 23.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망국의 한 담겨

2002년 문을 연 경의선의 마지막 역, 도라산(都羅山)역으로 알려진 도라산은 파주시 군내면 벌판 한가운데 솟은 156m 높이의 작은 봉우리다.

파주시지(市誌) 등에 따르면 도라산이란 이름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망국의 한과 서라벌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927년 후백제 견훤의 공격으로 경애왕이 죽고 경순왕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국운을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은 경순왕은 935년 "무고한 백성을 다치게 할 수 없다"며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한다. 왕건은 신하들을 이끌고 송도(개성)를 찾아온 경순왕을 낙랑공주(樂浪公主)와 혼인시켜 부마로 삼았다. 그리고 정승공(政承公)으로 봉하고 경주를 식읍(食邑)으로 내렸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서라벌을 그리며 찾았던 도라산 정상에 지금은 전망대가 설치돼 실향민들을 맞고 있다. 망원경을 통해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다. /조선일보 DB

하지만 나라와 아들을 모두 잃은 경순왕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삼국사기는 경순왕의 태자가 항복에 반대해 통곡하다가 금강산에 들어가 죽었다고 전한다. 그가 마의태자다. 낙랑공주는 시름에 빠진 경순왕을 위해 남쪽이 잘 보이는 산 중턱에 영수암(永守庵)이라는 이름의 암자를 지었다. 영원히 이곳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경순왕은 매일 이곳을 찾아 신라를 그리며 상념에 빠졌다. 그렇게 이 산은 도라산, 신라의 도읍인 서라벌을 그리는 산이 됐다.

경순왕은 고려 경종 3년(978년)에 숨져 도라산 인근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묻혔다. 그는 서라벌 밖에 묻힌 유일한 신라 왕이다.

조선시대 봉수대가 설치됐던 도라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1987년부터 실향민들의 한을 달래고 있다. 그 방향만 남쪽이 아닌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700여m 떨어진 도라산역에는 하루 12번 열차가 왕복하며 이들을 실어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