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공양왕에 밥 날라다 준 마을
'식사(食寺)'라는 이름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과 관련이 있다.
고양시사(市史)에 따르면 공양왕은 1392년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왕위를 뺏기고 개성을 탈출해 고양 땅으로 도망오게 됐다. 며칠을 굶은 채 헤매던 공양왕은 마침 견달산(見達山·지금의 현달산) 아래에 있던 작은 절을 발견했다. 이 절의 스님은 공양왕을 절 근처 고개에 숨겨준 뒤 끼니 때마다 몰래 밥을 날라다 주었다.
주민들은 이 때부터 이 마을을 '밥절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식사는 밥절의 한자 이름이다. 공양왕이 숨었던 고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궐고개'가 됐다. 반역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양왕에게 밥을 날라 준 절은 왕이 잔 절이라는 뜻으로 어침사(御寢寺)라고 불렸다.
- ▲ 식사동의 유래가 된 공양왕을 모신 고양시 원당동 공양왕릉의 모습. 공양왕의 후 손인 개성 왕씨들이 매년 이 곳에서 제를 지낸다./고양시 제공
전설에 따르면 절밥을 얻어 먹던 공양왕은 계속된 추격을 피해 지금의 고양시 원당동 왕릉골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망국의 왕은 반나절 만에 왕릉골 연못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태조 이성계는 숨진 공양왕을 장사지낸 뒤 이 곳에 왕릉을 세웠다. 왕릉골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됐다. 주민들은 공양왕이 반나절만에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이 왕릉을 '반나절릉'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공양왕이 숨진 곳은 사실 고양이 아니라 강원도 삼척이다. 고양시 정동일(45) 문화재 전문위원은 "공양왕은 폐위된 뒤 강원도 원주로 추방됐다가 삼척에서 살해됐다"며 "조선 태종 때 삼척에 있던 왕릉을 고양으로 옮겨 온 것"이라고 말했다. 공양왕릉은 1970년 사적 제191호로 지정됐고, 공양왕의 후손인 개성 왕씨들은 매년 이곳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망국의 왕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식사동은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선 가구공단으로 유명했다가 지금은 신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오는 8월 99만㎡(약 30만평)의 땅에 총 9000여 세대의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내년 3월에는 국제고도 문을 연다. 지난해 8월 공사를 시작한 동국대 의생명과학캠퍼스와 동국대 일산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복합단지인 고양메디클러스터도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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