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강서구 가양동
'공암(孔岩)에 옛 뜻 많으나/ 탑 하나만 아득하구나/ 아래에 창랑수(滄浪水) 있으니/ 고기잡이 노래 저녁 그림자 속에 잠긴다.'
조선시대 시인 사천 이병연이 남긴 시 '공암층탑(孔岩層塔)'이다. 사천과 절친했던 겸재 정선은 이 시에 등장하는 한강(창랑수)변의 모습을 바위 셋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남겼다. 바로 강서구 가양동(加陽洞) 탑산(塔山) 부근 풍경이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가양동은 조선시대 양천현(陽川縣)의 중심이었다. 지금의 궁산(宮山) 남쪽에 양천현아(縣衙)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양'이란 지명은 일제시대인 1914년 생겼는데,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가마동(加麻洞)과 고양리(古陽里)에서 한 글자씩 떼서 합쳤다.
겸재는 1740년 양천현령(縣令)으로 부임해 현아 뒤편 궁산에 매일같이 올랐고, 5년 동안 인근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쓴 '겸재의 한양진경' 등을 보면 당시 일화가 여럿 나온다.
탑산 아래엔 유명한 바위가 둘 있어 '허가(許家)바위' '광주(廣州)바위'라 하는데, 모두 공암이라 불린 기록이 있다. 허가바위 밑부분에는 굴 같은 공간이 있는데,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許宣文)이 여기서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동의보감'을 쓴 명의(名醫) 구암 허준이 그의 자손으로, 허가바위 부근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인근에 허준기념관·구암근린공원 등이 있어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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