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왜군의 아이 낳아 기르게 했던 '異胎院'
산수가 수려해 길손이 끊이지 않지만, 뜨내기가 많아 번잡한 마을. 용산구 이태원동(梨泰院洞)은 예로부터 그러했다.
'이태원'은 본래 조선시대 이곳에 설치했던 원(院·출장 떠난 관원을 위해 나라가 마련한 숙박시설)의 이름이었다. 조선시대 학자 성현(成俔)이 쓴 문집 '용재총화'엔 이런 대목이 있다.
'이태원이 목멱산(남산) 남쪽에 있는데 맑은 샘물이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큰 소나무가 가득하니 성 안 부녀자들이 피륙을 세탁하기 위해 많이 모였다.'
평화롭던 이태원의 물정을 바꿔놓은 건 임진왜란이었다. 한양까지 함락시킨 왜군은 조선 여자를 겁탈하기 일쑤였는데, 이태원 근방에 있던 운종사(雲鐘寺)가 비구니(여승) 절이라 피해가 컸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가 진을 치고 수시로 여승을 범했다는 말까지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이때 임신한 여자들의 처우 문제가 생겼다. 조정은 논의 끝에 여승들이 움막을 짓고 아이를 기르도록 허락하니, 이후 일대를 이국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뜻에서 '이태원'(異胎院)이라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에 투항한 왜군들이 여기 모여 살아 '이타인'(異他人)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이타인과 이태원의 인연은 이어져, 해방 후 미군부대가 인근에 들어오면서 그들을 상대로 한 상점과 유흥가가 생겨났다. 요즘도 세계 각국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결코 짧지 않은 인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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