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재벌총수, 의원, 대법관, 장관의 '사생활'도 기록
전직 대통령, 재벌총수, 국회의원, 대법관, 장관, 교수, 의사 등 각계 유력인사들의 사주풀이와 은밀한 사생활 정보까지 담은 '역술인 X파일'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일보> "수백만원씩 받고 '역술인 X파일' 유통중"
22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국내 역술계의 전설로 불리는 '부산 박도사'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이 생전 자신을 찾았던 유명인들의 운세를 기록한 간명집(看命集)이 불법 복제돼 거래가격 수백만원에 암암리에 유포되고 있다. 이 책자에는 그가 수십년 동안 운세를 봐줬던 수천 명의 사주풀이가 담겨 있으며, 정ㆍ재계 유력인사들의 '은밀한' 정보까지 담고 있다.
2000년 타계한 박씨는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 1920~1983),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琓, 1903~1992)과 함께 역술계의 전설적 '빅3'로 꼽혀온 이로, 박정희 정권 때부터 1990년대까지 정ㆍ재계 유력인사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기업 운영이나 정책 결정에도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국내 굴지의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 시험에 매년 참여해 관상을 본 뒤 그룹 총수에게 이를 알려 당락을 좌우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박씨는 자신을 찾은 이들의 운세를 풀이한 내용을 자필로 꼼꼼히 기록했는데, 그 방대한 자료가 <명리연구> 등의 제목으로 10~30권 분량으로 제본돼 역술인들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일부는 인터넷으로도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명리연구'복사본에는 박씨가 운세를 봐준 고객들의 사주와 부부운, 자식운, 재물운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A회장의 운세 풀이에는 "어두운 세상을 명명하게 밝혀주는 등불 역할을 한다"며 "51~55세까지는 ○○사업, △△사업 등으로 사업이 분망하고… 60세부터는 30대 재벌 그룹에 등명(登名)이 된다"고 적혀 있다.
사주풀이 외에도 고객의 신상 정보도 간략히 기록돼 있다. 특히 A회장, B회장 등 재벌 총수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과 함께 이들의 사주와 "모(母)가 둘이다", "이복형제가 장성(將星)이다" 등의 민감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들 중 국회의원, 대법관, 장관, 대학교수, 의사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한 전직 대통령의 사주도 담겨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역술인은 "이 자료는 과거 고관대작들의 운세가 총망라된, 역술계의 'X파일' 격"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부인 전모(71)씨는 "자료가 나돌고 있다는 얘기는 지인으로부터 듣고 알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그 자료들이 세상에 공개됐는지는 모르겠다"며 "제자였다는 사람들이 예전부터 우리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접근해 자료를 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박재현, 박정희 죽음 예언했다가 남산에 끌려가기도
<한국일보>가 보도한 제산 박재현(1935~2000)은 생전에 숱한 일화를 남긴 전설적 역술인으로 유명하다.
박재현은 사주명리학의 대가로, 자강 이석영, 도계 박재완과 함께 해방 후 90년대까지 한국 풍수계를 쥐락펴락하던 3대 거성 중 1인이었다.
조용헌의 저서 <담화>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을 계획하고는 박재현에게 사람을 보내어 물어보니, 박재현은 담뱃갑에 '유신(幽神)'이라는 글씨를 썼다. 즉 "유신(維新)을 하면 유신(幽神), 곧 저승의 귀신이 된다"는 무서운 예언이었고, 그는 곧바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호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에게 피살돼 박재현 말대로 저승귀신이 되었다.
또한 <이야기 명리학>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포항제철의 박태준 회장은 헬기를 타고 박재현이 살고 있던 서상까지 제산을 만나러 온 적이 있다. 박 회장과 박재현은 같은 박씨라서 인간적으로 서로 친한 사이였다. 포철 박 회장이 헬기를 타고 직접 박재현을 만나러 왔던 일은 몇몇 일간지에서 이를 기사로 보도해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였다. 박 회장은 사석에서 박재현을 가리켜 “살아 있는 토정을 보는 것 같다”고 칭찬한 바 있다. 정치인 김복동씨와 김기재씨도 제산과 왕래가 잦았다.
이밖에 박재현은 고 이병철 회장 등 재계를 비롯한 각계 유력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그가 남긴 '역술인 X파일'은 정-재계를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 임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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