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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대통(행운)]/남는얘기

"내 글이 행복을 여는 문고리였으면 해요"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8. 6. 13.

"내 글이 행복을 여는 문고리였으면 해요"

[머니위크]은퇴, 그 후의 삶..금융맨에서 기자로 홍완기 씨

지난 2007년 3월, 평소 불편을 느꼈던 우체국의 우편 후불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위해 정보통신부 홈페이지를 찾은 홍완기(62) 씨는 눈이 번쩍 뜨이는 공고문 하나를 발견한다.

'제 5기 실버넷뉴스 기자단을 모집합니다.'

기자로서 자신이 직접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서 인터넷 매체에 올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홍씨는 조금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길로 실버넷뉴스의 기자단에 원서를 낸 홍씨는 얼마 뒤 '실버넷 미래경제부 기자'라는 새로운 명함을 얻었다.

◆베테랑 금융맨, 기자로 새로운 인생 2막을 열다

홍씨는 오랜 세월을 조흥은행과 솔로몬신용정보에서 일해 온 베테랑 금융맨이다. 홍씨가 정년퇴임을 맞이한 것은 약 9년 전인 1998년. 조흥은행 정년퇴임을 맞이한 그는 그러나 퇴직 후 곧바로 조흥은행에 다시 입사를 하게 된다.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계약직 직원을 모집하는 데 지원한 홍씨가 약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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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전에 오랫동안 감사 업무를 맡아왔던 게 아마 도움이 됐던 모양입니다. 그 당시 계약직으로 제가 맡은 일 또한 은행의 영업점을 감사하는 업무였거든요. 덕분에 정년퇴임을 한 이후에도 5년반 동안을 더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조흥은행의 계약직을 그만 둔 이후에도 홍씨는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얼마 후 지인의 소개를 받아 솔로몬신용정보에 계약직으로 입사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는 솔로몬신용정보에서 채권 회수와 관련된 업무를 돌보는 채권관리사로 일을 하고 있다.

1998년 은퇴를 맞이한 지 벌써 9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일을 하지 않고 쉬었던 기간은 2004년 조흥은행을 퇴사하고 솔로몬신용정보에 입사할 때까지 단 2개월에 불과하다. 그만큼 쉼없이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은퇴 후에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참 행복한 편입니다. 은퇴 후에도 꾸준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요."

60세가 넘은 지금도 "나이 먹어가는 걸 잊고 산다"고 할만큼 열심히 인생을 살고 있는 홍씨에게 인터넷신문매체 실버넷뉴스의 기자는 전혀 새로운 도전이다.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쪽 일과 기자일은 겉보기에는 전혀 무관한 듯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내가 맡았던 일이 바로 감사업무입니다. 나쁜 관행을 개선하는 일을 주로 해왔기 때문에 기자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곰곰히 따져보면 금융계통에서 오래 일한 경험 덕분에 실버넷에서도 미래경제부의 기자로 활동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로서는 이제 첫출발인 만큼 오랜 직장 경험을 살려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실버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실버뉴스

홍씨가 활동하고 있는 실버넷뉴스는 '실버들이 실버를 위해 직접 제작하는' 인터넷 언론매체의 하나다. 2001년 출범 이후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버세대들을 위한 각종 정책이나 사회복지 제도, 각 지역의 따뜻한 실버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실버들이 직접 발로 뛰는 뉴스를 내건 만큼 실버넷에 기사를 쓰는 기자들 역시 만 55세 이상의 실버세대들로 구성돼 있다. 1년에 1회씩 이뤄지는 기자단 모집을 통해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버넷 기자만 해도 모두 100여명. 만 55세의 나이 어린(?) 기자부터 최고령 85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기자들이 실버들을 위한 갖가지 소식을 담아내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이토록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실버넷의 기자들이 모두 무급으로 일하는 자원봉사 기자단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엄격한 평가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기사를 출고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실버넷의 정식 기자들이다. 3개월 동안의 정식 기자교육을 거쳐 기자로서의 자질을 검증 받은 뒤에라야 실버넷의 기자단으로 정식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홍씨 역시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지난해 6월 실버넷의 5기 기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됐다.

"기사 작성법, 사진 촬영법, 보도자료 읽는 법까지 기자로서 필요한 모든 과정을 교육받게 됩니다. 나이 먹어서 새로운 걸 배우는 만큼 글 한줄 쓰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게 마냥 즐겁습니다. 실버넷 기자로 부끄럽지 않게 활동하려면 아무리 어려워도 기초부터 꼼꼼히 배워야죠. 그래야 독자들을 위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잖아요."

요즘엔 독자들이 읽기 쉬운 글을 위해 간단 명료하게 글을 쓰는 법을 맹연습 중이라는 홍씨는 기자 수업과 관련한 얘기를 하는 내내 싱글벙글이다. 교육 과정 중 내려진 과제에 따라 직접 발로 뛰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모든 과정이 신이 날 뿐이다.

◆미담기사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

무엇보다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게 가장 신이 난다. 자신이 쓴 기사가 인터넷에 올려지고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생각을 할 때면 기사 한줄한줄 써내려 갈 때마다 책임감도 크다.

홍씨는 실제로 기자가 된 뒤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그의 차림새다. 예전에는 가방 없이 외출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그가 요즘에는 메모지와 연필이 들어있는 가방 없이는 바깥나들이에 나서는 법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취재거리가 있다 싶으면 당장이라도 취재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스쳐 지나갔던 모든 일들이 지금은 독자들에게 전해주면 좋을 기사거리로 보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복지관도, 실버들과 관련한 각종 전시회도 모두가 그의 취재터다. 홍씨는 "남들은 돈내고 들어가는 실버전시회를 나는 기자 자격으로 공짜로 들어갈 수 있으니 돈도 아끼고 전시회 구경도 하고 일석이조 아니냐"며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실제로 취재를 다니면서 배우는 점도 많다. 홍씨는 바로 얼마전에도 송파 노인복지관에 취재를 갔다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현장을 스케치하는 기사였는데 그는 노인복지관에서 치매 환자를 돌봐준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치매 환자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이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복지관에서 적은 경비로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도 직접 취재를 해보기 전에는 몰랐던 일이고요. 복지사 분들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나부터도 빨리 봉사활동을 시작해야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동네복지관에서 행하고 있는 좋은 사업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홍씨는 실버넷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노인복지관의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였지만 실버넷을 통해 실제로 미담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로 인해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아름다운 기사를 쓸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누구라도 좋은 말을 하면 나에게 더 좋은 대우가 돌아오는 법입니다. 기사라는 것 역시 결국은 세상에게 건네는 나의 말입니다. 기사를 통해 좋은 소식을 전하고 좋은 말을 건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더 악의없이 좋은 일들만 퍼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앞으로 쓰고 싶은 기사도 그런 것입니다. 사회의 나쁜 점을 꼬집기 보다는 좋은 기사로서 우리 사회를 보다 아름답게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우리 인생이 아직은 살만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홍완기씨. 앞으로도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미담기사를 찾아 세상을 발로 뛰겠다는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좋은 기사로 '아직은 살 만한 우리 사회'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