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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대통(행운)]/남는얘기

유가 200달러 시대 오면…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8. 5. 31.
유가 200달러 시대 오면…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
경제성장률 5%P 떨어져 마이너스 성장
동네 수퍼는 각광… 노숙자 급증할 수도
비행기 대신 선박이 운송수단으로 인기
중동 정세 불안… 테러도 기승
자원전쟁 치열
 
김영진 산업부 기자
 

"똑같은 80㎡(25평) 아파트인데 왜 가격 차이가 5000만원이나 납니까?"

"203동은 남향이거든요. 겨울철에 난방비를 아낄 수 있잖아요. 요즘 남향집이 인기 폭발인 거 모르세요?"

유류비 씨는 고민 끝에 203동 아파트를 선택했다. 서류를 떼려고 구청으로 향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냉방비 절약을 위해 금요일은 격주로 오전 근무만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세상이 온통 유가 절약 일색이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도 자동차 휘발유 쿠폰을 없애는 대신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게만 30%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정부는 학교에 단축 수업을 실시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조만간 낮춘다는 발표도 나왔다.

신문에는 비행기 때문에 사라졌던 대서양 횡단 여객선이 다시 등장했다는 뉴스가 사진과 함께 크게 나왔다.

■"유가 200달러 시대 되면 경제성장 마이너스 된다"

물론 현실은 아니다. 배럴당 200달러의 초(超) 고유가 시대가 닥치면 예견되는 시나리오들이다. 하지만 이미 유가가 130달러를 넘은 만큼, 공상(空想)으로만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시간이다. 200달러 시대가 서서히 닥친다면 인류가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고 큰 문제 없이 극복할 수도 있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1차 오일쇼크 이전에 비하면 지금 유가는 100배가 넘지만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다"며 "유가가 오랜 시간을 두고 오른다면 어떤 식으로든 적응해서 견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다면 재앙이 닥칠 수 있다. 강성대 한국은행 차장은 "예컨대 2년쯤 뒤에 배럴당 200달러가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 '힘들지만 견딜 만한 수준'이 되겠지만, 6개월 이내에 200달러 시대가 찾아오면 얼마나 타격을 받을 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유가가 급등세를 지속해 연평균 유가가 200달러를 기록할 경우 경제성장률(GDP)이 5%포인트 가까이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4.8%인 점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성장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지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차 오일쇼크 때인 1970년대 말의 유가(30달러 대)를 물가 수준과 석유 의존도 등을 감안해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150달러"라며 "결국 지금 유가가 평균 150달러로 오른다면 충격이 과거 2차 오일쇼크와 비슷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미 재앙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27일과 28일 런던과 워싱턴에선 트럭 운전사들이 유가 안정 대책을 요구하며 차량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에선 어민들이 선박 연료(디젤유) 가격 인상에 반발해 거리로 나섰다. 자카르타에서도 학생, 택시기사들이 연료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국내에서도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 하늘도시' 조성 공사가 지난 23일부터 전면 중단됐다. 덤프 트럭 기사들이 유가 폭등에 따른 운반비 인상을 요구하며 운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도 유가 인상으로 원자재값과 물류비가 치솟자 가동을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백화점 매출은 떨어지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발길이 남대문시장 등 재래 시장에 몰리고 있다.


■교외 아파트 슬럼화, 에너지절약산업 부상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분석실장은 "유가 200달러 시대가 되면 에너지에 대한 마인드가 180도 바뀌고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를 들어 대도시 인근 교외 지역에서는 살기 힘들어 질 수 있다. 미국의 사회 비평가 제임스 하워드 컨슬러(Kunstler)는 자신의 저서 '기나긴 비상사태(The long emergency)'에서 "석유 가격이 날로 비싸지는 세계에서 교외 지역에 사는 라이프스타일은 더 이상 유지하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높은 교통비 부담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외 지역 집값도 하락할 수 있다.

또 교외의 대형 쇼핑몰도 파리 날릴지 모른다. 반면 동네 수퍼나 문방구가 각광 받을 수 있다.

복거일씨는 "기업들에게 에너지 절약에 대한 컨설팅서비스를 하는 산업이 뜨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에너지 절약 방안을 컨설팅해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노숙자 급증으로 고민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출 금리가 상승한다. 유가 인상으로 옷값은 물론 음식비, 숙박비, 식료품비 할 것 없이 물가가 뛰면, 저소득층은 카드 값과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 투자회사인 립캐피탈매니지먼트의 스티븐 립(Leeb) 회장은 '오일의 경제학(The coming economic collapse)'이란 책에서 "유가가 200달러를 넘어 고공 행진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드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 급등이라는 더욱 큰 부작용이 초래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항공 운항 줄고 기차·선박 인기, 휘발유 자동차 급감

프랑스의 컨설턴트 엔지니어인 장 뤽 벵제르(Wingert)는 '에너지 전쟁'이란 책에서 유가가 치솟으면 항공 교통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다.

항공사들은 에너지 절감을 위해 운항 편수를 줄인다. 또 비행기 한 대를 통째로 빌려 쓰지 못하고, 다른 항공사들과 함께 한 대의 비행기를 동시에 세내어 이용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파리-뉴욕 항공편 하나를 에어프랑스가 300석,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200석, 루프트한자가 50석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벵제르는 또 운송 수단으로 선박이 부각될 것으로 예견했다. 석유가 배럴당 2500달러가 된다 해도 중국의 섬유 완제품을 유럽까지 배편으로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유로를 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기차 수송 역시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홍종호 한양대 교수는 "무엇보다 자동차 문화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휘발유를 많이 쓰고 차체가 큰 레저용 차량(RV)보다 연비 좋은 경차(輕車) 선호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는 머지 않아 세금 감면,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에너지 절감형 하이브리드(전기+휘발유) 차량 개발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승용차는 인터넷을 통한 카풀이 활성화되고, 버스는 정원이 모두 차면 출발하는 식으로 승차 정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 있다.

유엔은 '2020 글로벌 에너지 시나리오' 보고서(이하 2020보고서)에서 2020년에는 하이브리드카가 전체 자동차의 31.7%를 차지해 현재의 휘발유 자동차(26.5%)보다 더 많이 굴러다닐 것으로 예상했다. 바이오연료 자동차(19%), 전기자동차(15.4%), 수소자동차(9.5%) 등도 많이 나타날 것으로 봤다.


■중동 영향력 강화, 테러·국제정세 불안

유가가 오르면 세계의 부(富)가 산유국에 집중되고, 결과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中東)과 러시아 등 산유국의 목소리가 국제 사회에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파워 게임이 심각하게 전개될 수 있다고 정치학자들은 보고 있다.

차동욱 연세대 연구교수는 "미국이 중동이나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히 중동에 대해 후진적인 민주주의 체제와 여성·아동 등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때 이슬람권의 반미 강경세력이 득세할 경우 제2의 9.11테러가 발생할 수 있고 종교전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이득을 보는 그룹이 생기는 데, 바로 군수(軍需) 업체들이다. 중동·러시아와의 대립이 가속화하면 미국 군수산업의 발언권이 세지고 정부에 대한 입김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국제 사회의 공조 체제도 불안해질 수 있다. 차 교수는 "유가 인상으로 곡물 가격이 오르면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간의 갈등이 심각해져 지역 간 경제 협력이나 안보협의체 논의는 진척을 볼 수 없다"고 내다봤다.

유엔의 2020보고서도 유가 인상과 함께 지정학적 불안이 확산되면 국제 공조 체제가 깨져 테러리즘이 더욱 득세할 것으로 봤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아 내리는 북극에서 석유와 가스 등 거대한 자원이 발견될 가능성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덴마크, 캐나다, 노르웨이 등이 치열한 자원 전쟁을 벌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나리오는 유가가 단기간에 200달러로 폭등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유가 전망은 전문가에 따라 배럴당 80달러에서 500달러까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최근에는 유가가 상투를 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세계 경기 하강과 유가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이 가시화하면 올 하반기부터는 유가가 하향 안정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코메르츠방크의 애널리스트인 유진 와인버그(Weinberg)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유가가 주로 투기자금에 의해 급등했기 때문에, 하락도 극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입력 : 2008.05.30 13:19 / 수정 : 2008.05.30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