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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뱀딸기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1. 5. 28.

뱀딸기

최규학

푸른 숲으로 가는 오월의 길가에
노란 옷을 입은 엄마 뱀딸기 꽃과
빨간 옷을 입은 아기 뱀딸기 열매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꽃을 꺾고 산딸기를 따 먹는 사람들조차
뱀딸기 가족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뱀딸기 가족은 세상의 어느 가족보다 오손도손
행복한 일생을 보냅니다
아마 전생에 선행을 많이 쌓은 어느 가난한 가족의
천국 환생이 아닐까 합니다
뱀딸기는 뱀이 먹어서 뱀딸기가 아니고
뱀이 있어서 뱀딸기라 하였다 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배도 고프고 겁도 없고 하여
뱀딸기를 따먹은 적이 있는데
다행히 맛이 없어서
길섶에 들어가지 않았고 뱀에 물리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뱀딸기를 보면 장미의 눈물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이 이글거립니다
붉은 진주 같기도 하고
숲의 비밀 단추 같기도 합니다
딸기 계의 신선 같아 보입니다
푸른 제사 그릇에 올려놓은 붉은 심장 같아 보입니다
푸른 바다에 뜨는 해처럼
푸른 잎에 솟아오르는 장엄한 일출이 가슴 벅차게 합니다
누가 붙였는지 뱀딸기라는 이름 덕분에
사람의 눈에 들지도 않고
사람의 입맛에 맞지도 않아서
길가에 있으면서도 뱀딸기는
아무 걱정 없이 한평생을 즐기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