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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밥 한 사발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0. 11. 13.
밥 한 사발

최규학

밥 한 사발 먹기 위해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손길이 필요하다
쌀 한 톨이 나오기까지 팔십팔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시금치가 반찬이 되기 위해서는 천지가 수없이 개벽해야 한다
고등어 한 마리가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주여행보다 더 먼 여정을 거쳐야한다
밥 짓는 이의 정성은 또 얼마나 갸륵한가
누구는 가슴으로 밥을 짓는다
누구는 눈물로 밥을 짓는다
그러기에
밥 한 사발은 밥이 아니라 누구의 가슴이요 누구의 눈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밥상을 뒤집어엎은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의 화신이었으리라
소문에 의하면 평생 밥상을 받기만 하고 한 번도 차려주지 않은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마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밥 한 사발 먹는 일보다 더 엄청난 일은 없다
그것이 기적인 줄 아는 순간 그대는 비로소 진리를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누군가에게 정성으로 밥 한 사발 차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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