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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산행코스 | 충청도의 산] 성불산(520m) - 충북 괴산군 감물면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0. 3. 20.
[주말산행코스 | 충청도의 산] 성불산(520m) - 충북 괴산군 감물면
잘생긴 소나무와 망바위는 감칠맛

괴산군이 꼽은 35명산 중 하나로 바위와 솔, 조망이 어우러져

폭설이 유난히 잦았던 겨우내 산에 갈 때마다 눈(雪)을 피해 다닌 불운에 대해선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 입춘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일기예보에 방한재킷 하나를 더 챙겨 넣는다. 오늘 산행은 바위 타는 윤태동과 수필 쓰는 이종려, 여성장애인단체 일을 맡아보는 권은숙이 합류했다. 권은숙과는 5년 전 겨울, 지리산 종주 후 오랜만의 동행이다. 출근할 사람을 꼬드겨 산으로 불러냈으나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에 치어 곤죽이 된 사람이 차고 맑은 산바람을 쏘이고 돌아가면 분명 그의 일도 다시 맑아지고, 능률도 배가될 거란 믿음 탓이다.

산행 들머리인 기곡마을을 앞두고 우선 제월리로 접어든다. 한여름 피서지로 왁자했을 괴강(달천)의 푸른 물빛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제월대와 고산정이 자리하고 있다. 아담한 단층 정자인 고산정은 선조 때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유근(柳根· 1549~1627)이 건립한 정자로 처음엔 만송정(萬松亭)이라 불리다가 광해군이 즉위하자 자신의 호를 따서 고산정(孤山亭)이라 고쳐 부른 곳이다.


▲ 1봉(429m)에서 본 점골 풍경. 주변 산들에 둘러싸여 안온한 기운 속에 빈 논밭들의 문양이 아름답다.

“이렇게 풍광 좋은 곳에서 기생들을 불러 먹을 갈게 하고 시를 지었겠지요? 조선시대의 문학에선 기생문학을 빼면 논할 게 거의 없어요. 저기쯤에선 솥을 걸고 술상을 차렸겠네요.”

정자마루에 올라 강물을 내려다보던 윤의 말이다. 분명 천렵 생각이 나서 하는 말일 텐데 화제는 엉뚱하게 기생문학 이야기로 흐른다.

“그림이 절로 나오네. 그때 사대부를 상대하던 기생들의 학문과 예능이 어디 보통 능했나.”

천민계급의 기생들이 신분이 높은 선비들과 상대하기 위해 글을 배우고 가무악을 익힐 때 여염집 여자들은 남존여비 사상의 희생물이 되어 족쇄 같은 삼종의 도를 따라야 했으니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과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문학이 당키나 했을까. 사대부들과 당당히 학문을 논하며 자유분방한 연애로 마음껏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던 기생들은 영혼부터 자유로웠을 터.

‘배꽃 비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가을 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에도 내 생각을 하실까’ 노래했던 매창과 서경덕을 흠모하여 스승으로 모시고, 벽계수를 조롱하며 이생을 꼬드겨 삿갓과 베옷차림으로 금강산 유람을 나선 천하의 황진이, ‘찬비(寒雨)를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 구애하는 임제에게 ‘오늘은 찬비를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여라’ 화답했던 한우 얘기로 다들 화제가 풍성하다.


잘생긴 병정들이 도열하여  예 갖추는 듯한 소나무 터널

▲ 고산정은 선조 때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유근이 건립한 정자로 괴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제월대 옆에 자리하고 있다.
맵찬 강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역사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1888~1968)의 문학비가 저만큼 외따로 서 있다. 현대사의 수레바퀴에 맞물려 자신의 고향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벽초의 문학비 앞에서 일행의 기생문학 이야기는 뚝 멈추고 만다. 서예가 신영복 선생이 쓴 비문의 글씨체가 오늘 날씨처럼 맑고 정갈하다.

검승리 기곡마을 초입 농산물집하장 옆에 차를 세우고 마을로 들어선다. 도덕사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다 다리를 건너면 600년 수령의 느티나무 거목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여기서 50여 미터 즈음의 창고 앞 너른 마당에서 왼쪽 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산 아래 정겨운 돌담을 두른 허름한 집이 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아내기 위한 배수로를 따라 그 집의 왼쪽 담장을 끼고 돌면 사정없이 곧추선 산 능선이 바로 턱 앞에서 시작된다. 별다른 안내판도 없이 앞서 간 이의 발자국만 희미하다. 그 가파름에 정신없이 10여 분 치고 올라서면 잠시 숨 돌릴 자리가 나오다가 이내 가파른 오르막이 다시 이어진다.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멈추자 이때다 하고 권이 자리에 주저앉는다. 뜻밖이다. 과중한 업무와 활동으로 최근 매너리즘에 빠져 괴로워하는 권을 산으로 꼬여내 쾌재를 부르고 있다가 그의 약해진 모습을 보자 콧등이 찡하다. 자주 꼬여내지 못한 내 탓만 같다.
20여 분을 더 올라 310봉에서 한숨을 돌리며 종려씨의 화사한 옷차림에 화제를 모은다. 검은색을 좋아해 등산복에 모자와 배낭까지 검은색 일색이던 종려씨의 화려한 변신에 모두들 뜨거운 응원을 보내자 즉석에서 잣까지 띄운 대추차로 화답한다. 우리들의 즐거운 산행에 산도 신이 났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곧추 오르다가 곧추 내려서기를 반복한다. 과연 명산답다.

주중이라 그런지 괴산 35명산에 속하는 성불산에 우리 일행 말고는 사람 하나 보이질 않는다. 잘생긴 병정들이 도열하여 예를 갖추는 듯한 소나무 터널을 지난다. 초록 내음 가득한 피톤치드에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시려는 듯 일행의 걸음이 슬그머니 멈춰진다. 배낭을 짊어진 채 대화도 없는데 저마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넘실거린다.

“안 가?”
“조금만 더요. 이 멋진 솔숲을 두고 어떻게 가요. 소나무 사진 좀 많이 찍으세요.”
감성이 풍부한 윤의 말이다.

▲ 이탄과 점골로 나뉘는 사거리 안부를 지나 급하게 치솟은 암릉지대.

주변의 큰 산들을 다 차지한 듯한 기쁨

성질이 딱 부러지게 분명한 산이다. 한바탕 대차게 오르고 나면 멋진 조망장소와 쉬기 좋은 바위가 나타난다. 잘생긴 산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산이 자리를 내 줄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조망한다. 산 아래 점골 깊은 골짜기는 주변 산들에 둘러싸여 안온한 속에 구불구불 강 같은 마을길 양쪽으로 빈 논밭들의 문양이 아름답다. 곧 기지개를 켜며 나무마다 꽃눈이 트이면 겨우내 몸이 근지러웠던 농부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나 둘 논밭으로 나올 것이다.

안부를 지나 429봉을 거쳐 480봉으로 향한다. 어느 한 구간 지루할 사이가 없다. 날카로운 바위를 오르는 재미와 노송 사이로 조망되는 풍광들, 숲인가 하면 날망(충북 방언으로 ‘마루’)이고 날망인가 하면 솔숲이 이어진다.

돌탑이 있는 505봉에 오르자 시원스레 시야가 터진다. 돌탑으로 인해 505봉을 정상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동쪽 나뭇가지 사이로 뾰족한 봉우리의 정상이 보인다. 505봉의 남쪽 능선 아래 조령산 방향으로 몇 그루 고사목들이 보이고, 들판 너머로 군자산과 남군자산, 덕가산, 칠보산, 보배산이 조망된다. 저기 어디쯤 쌍곡구곡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리라.

작은 산에 올랐어도 주변의 크고 멋진 산들이 조망되면 그 기쁨은 온전히 현재 위치하고 있는 산의 몫이다. 성불산에서 주변의 큰 산들을 다 차지한 기쁨으로 한 걸음에 정상에 닿을 것만 같은데 한 걸음을 떼니 이탄과 점골로 나뉘는 사거리 안부다. 능선을 타고 치솟은 바위 위로 로프가 매어져 있다. 로프를 잡고 발의 간격을 좁혀 디디려 애를 쓰며 바위에 오른다. 정상 못 미처 옛 성불사 터가 나타난다. 한낮의 햇살이 거기 담뿍 자리하고 있다.

정상은 그리 넓지 않은 터가 잘 다져져 있고 쌓다 만 돌탑이 들어앉아 있다. 돌탑 뒤로 정상표지석이 있다. 동쪽으로 매전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박달산, 월악의 영봉들과 함께 멀리 속리산 능선들이 춤추듯 너울거린다. 한여름 녹음이 울창할 때면 지금처럼 조망이 그리 좋진 않겠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매전과 점골로 내려가는 양 갈래길 이정표가 보이고 우리가 내려가야 할 이탄방향 이정표는 우리가 올라온 기곡방향의 옆으로 숨어 있다. 내리막길에 눈 쌓인 곳이 없다고 마음을 놓는 찰나 낙엽을 밟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응달진 곳이라 낙엽 아래 서리가 맺혀 있다. 꼬리뼈가 받은 충격에 일어날 생각도 못한다. 일행이 걱정스런 눈길을 거두질 못해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앞장서 걷는다.

간벌 작업 중인 숲을 지나 이어지는 낙엽송 군락을 빠져나오면 시야가 툭 터지며 정면으로 큰 무덤이 보인다. 무덤 앞에서 왼쪽 소로로 접어든다. 좁은 계류를 건너 개들이 짖어대는 컨테이너 가건물을 지나면 바로 포장도로가 나온다. 노천에 조각전시물이 버려진 듯 나뒹구는 폐허의 다래원을 지나 500여m 거리에 이탄(배나무여울) 버스정류장과 이탄교가 나온다.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에 최근 신축한 성불사가 눈에 띄나 지나쳐 걷는다.

차를 세워둔 기곡마을로 이동할 방법에 대해 일행의 의견을 물으니 평소 걷지 못해 슬픈 짐승들처럼 하나 같이 걷기를 희망한다. 괴강(느티여울)을 따라 20분 걸어 원점에 도착한다.

▲ 1 환상적인 노송터널의 초록 향기에 취한 일행. 좀처럼 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매력적인 숲이다. 2 들머리. 느티나무를 지나 50여m 진행하면 왼쪽의 창고마당에 닿는다. 안쪽의 왼편 담장 뒤편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3 성불산 정상. 동쪽으로 매전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로 월악의 영봉들과 함께 멀리 속리산 능선들이 춤추듯 너울거린다. 4 낙엽송지대를 빠져나오면 보이는 큰 무덤 앞에서 왼쪽 소로로 방향을 꺾어 내려가면 이탄으로 나가는 포장도로가 있다.

 

산행길잡이

기곡마을 초입 농산물집하장과 600년 수령 느티나무를 지나 50여m 진행 후 창고 앞마당에서 왼쪽 방향을 보면 정겨운 돌담장을 두른 허름한 집 한 채가 있다. 그 집의 왼쪽 담장을 끼고 배수로를 따라 10여m 진행하면 경사가 급한 들머리가 시작된다. 외부차량은 버스정류장 주변에 주차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변에 제월대와 고산정, 홍명희 생가, 괴강유원지 등의 명소가 있다.

○ 기곡 버스정류장~ 600년 느티나무~ 창고 앞 돌담 집 왼쪽 뒷길~ 310봉~ 429봉~ 480봉~ 505봉, 케언~ 성불산고스락~ 이탄방향 이정표~ 458봉~ 묘지 왼쪽 소로~ 다래원~ 이탄 버스정류장(3시간 소요)

정상에서 매전이나 점골 법흥사 방향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교통

○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괴산직행버스가 하루 18회 운행한다. 괴산에서는 감물행 시내버스가 하루 15회 운행한다. 기곡정류장에서 하차한다. 괴산 공용정류장(043-833-3355), 이탄정류장(043-833-1056), 괴산 아성교통(감물방향 043-734-3351~4)  

○ 승용차 
중부고속도로~증평IC~괴산~19번 국도 충주 방면~괴산읍 감물 방면~기곡마을
중부내륙고속도로~수안보IC~19번 국도~괴산증평 방면~이탄마을, 혹은 기곡마을
경부고속도로~청주IC~괴산읍 감물방면~기곡마을



숙식

메기매운탕, 붕어찜이 별미인 괴강다리매운탕(043-832-0130), 괴산올갱이전문점( 043-832-1144), 토종닭백숙과 한방오리탕을 주메뉴로 하는 느티나무집(043-832-0752)이 있다. 숙박업소는 인근에 제월대 펜션(http://www.jewol.co.kr)이 있다.



/ 글·사진 차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