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능선 오르니'킬리만자로' 보이네
봄은 계곡에서 비롯된다.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자 골짜기는 촉촉이 젖어든다. 삼라만상이 꿈틀거린다. 어디서 솟아났는지 맑은 물이 졸졸 소리 내며 흘러내리고, 그 계류는 바위틈을 비집고 빠져나가는 사이 겨우내 뿌옇게 덮고 있던 흙먼지를 벗겨 내고 계곡가를 적시며 새 생명을 잉태시킨다.
그 봄기운을 느끼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등산인들이 팔당 예봉산(禮峰山·683.2m·남양주시 와부읍)을 줄지어 올랐다. 간간이 막 고개 내민 냉이와 쑥을 찾느라 중년 여인들은 꼬챙이 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고, 계곡을 벗어나 아름드리 소나무 울창한 능선으로 접어들자 성격 급한 이들은 벌써 반팔 차림으로 산을 올랐다. 이들은 '춥지 않으냐?'는 주변 눈길에 오히려 '아직도 한겨울 옷차림으로 산을 오르느냐?'는 표정이다.
- ▲ 계곡물은 봄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등산인들이 예봉산 계곡을 거슬러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 조선영상미디어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급경사 계단 길을 오르다 되돌아서자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밑으로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하남 검단산(650m)과 한강이다. 김포평야를 향해 유유히 흘러내리는 한강이 수도 서울의 젖줄이라면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과 삼성산은 서울을 포근히 감싸 안은 어머니 품이자 팔처럼 느껴졌다.
가파른 능선 길 따라 정상에 올라서자 동으로 남한강과 북한강 물줄기가 합쳐지는 두물머리 일원과 양평과 가평 일원의 산봉과 산줄기가 파노라마를 이루며 펼쳐졌다.
"와~, 용문산도 보이잖아. 꼭대기만 하얀 게 꼭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같은데."
정상에 모인 등산인들은 거칠 것 없이 터진 조망에 감탄하고, 아는 산이 눈에 띄면 동료에게 설명해주느라 목소리가 커졌다.
"저기가 오늘 최종 목적지예요? 만만치 않겠는데요."
활처럼 휜 능선 끝에 운길산(雲吉山·610.2m·남양주시 조안면)이 삐죽 솟아 있다. 서너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만큼 긴 거리다. 그런데도 운길산 가는 등산객들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오랜 시간 봄나들이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산행 길잡이
예봉산은 수도권의 여러 산 가운데서도 인기 만점인 산이다. 특히 2008년 말 덕소역~국수역 구간의 중앙선 전철복선화 공사가 완료된 이후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예봉산의 매력은 무엇보다 조망이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수도권 명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또한 동쪽으로 운길산, 북쪽으로 고래산까지 산줄기가 뻗어나가 능선 종주산행 코스로도 매력이 있다. 산길 대부분이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져 봄맞이 웜업 코스로 적합하다.
팔당역에서 5분 거리인 팔당2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해 남서릉~정상~벚나무쉼터~계곡을 거쳐 다시 마을회관 앞으로 내려서는 원점회귀코스(난이도 ★★·별 다섯개 기준)가 가장 인기 있다. 2시간30분~3시간 소요. 등산 마니아들은 예봉산에서 철문봉과 적갑산을 거쳐 운길산까지 잇는 종주산행을 즐겨한다(★★★★·6~7시간). 은행나무로 이름난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 풍광이 대단하다.
▶대중교통
예봉산 산행기점인 팔당역은 용산발 청량리역·회기역 경유 중앙선 전철로 접근할 수 있다. 열차 운행시각은 코레일 홈페이지(www.korail.com) 참조(메인화면 중앙의 '도움말'→'열차시간 및 운임표' 클릭 후 광역전철시각표 '용산-용문' 파일 열기 참조).
강변역(2호선)·광나루역(5호선) 경유하는 양평행 2000-1번(20분~1시간 간격), 강변역·천호역·강동역·하남시 경유하는 112-1번(5~10분 간격). 청량리 로터리에서 운길산역행 167번 (수시 운행)버스가 팔당역 부근에 선다.
▶맛집
팔당리 마을회관 부근의 싸리나무집(031-576-1183)은 등산인들에게 인기 있는 닭백숙 전문 집이다. 콩칼국수·쑥부침도 내놓는다. 북촌골(031-576-3323) 또한 엄나무닭백숙과 오리주물럭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감로주도 마실 만하다.
▶토박이 산꾼
이명희(52·남양주시 와부읍)씨는 예봉산 덕분에 귀한 딸 예은(8)을 얻었다. 이씨는 결혼 후 1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공기 좋은 곳에서나 살자는 마음에 서울을 벗어나 예봉산 기슭으로 이사 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 좋은 예봉산은 이씨에게 복덩이를 안겨주었다. 주중 한 번은 예봉산을 오른다는 이명희씨는 "예봉산을 오르며 한강을 바라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예봉산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과 얽힌 얘기가 전해지는 산이다. 예봉산 남쪽 끝자락이 뻗어내린 조안면 능내리 마현 마을에서 태어난 다산은 어린 시절 예봉산 자락을 오르내리며 웅지를 키웠다. 다산은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 산길을 걸으며 신유교사로 순교한 셋째 형 약종(若鍾, 1760~1801)과 흑산도 유배지에서 죽은 둘째 형 약전(若銓, 1758~1816)을 그리워하며 비통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이곳에는 정약용 선생 유적지(031-590-2481)와 실학박물관(031-579-6000)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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