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산행] ① 완도 상황봉
지역의 터줏대감들은 그 동네 최고의 전문가이자 문화해설사입니다. 직접 찾아낸 명소와 절터는 그들의 자랑이지요. 낯선 마을을 찾은 객(客)에게 토박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기만 합니다. 산행을 즐기는 여러분들을 위해 월간(月刊) 산과 함께 '토박이 산행'을 시작합니다.
전남 완도 상황봉(上皇峯·644.1m)은 남도를 대표하는 봄 산이다. 2월 초, 산 아래는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산 안의 동백나무 노각나무 가시나무는 푸른 잎으로 우거져 겨울을 맞지 않은 듯하고 간간이 나무에 매달린 빨간 동백 꽃잎도 봄을 느끼게 한다.
상록수 숲이 벗겨지면 상황봉에서 백운봉(白雲峯·600m)을 거쳐 송곳바위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길을 끈다. 뜻을 모아야만 움직인다는 '건드렁바위'를 흔들어보며 조망을 즐기고 다시 숲길을 따르다 관음사터로 내려간다. 석간수 샘물 맛과 남해 조망을 즐긴 다음 황장사바위, 남근석 등 흥미진진한 옛 얘기가 전하는 기암들을 스치며 한 발 한 발 정상으로 다가섰다.
- ▲ 완도 상황봉에서 내려다본 바다. 산 아래는 차가운 겨울이지만, 산 안은 빨간 동백꽃이 봄을 반긴다. / 조선영상미디어 정정현 기자 rockart@chosun.com
앙상한 가지가 오후 햇살에 유난히 반짝이는 숲을 빠져나와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산 안과 산 밖의 상반된 모습에 눈이 번쩍 떠졌다. 바로 앞 쉼봉(500m)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솟아 있고 북쪽 멀리 백운봉(600m)이 기암절벽을 늘어뜨린 채 우뚝 솟구쳐 있다. 해발 600m대 산답지 않게 웅장한 산세였다.
더욱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바다안개 살짝 깔린 바다 풍광이다. 동으로 해상왕 장보고가 진을 쳤던 청해진이 빤히 내려다보이고, 연륙교로 이어진 '명사십리의 섬' 신지도도 눈에 들어왔다. 남쪽 풍광은 더했다. 도산 윤선도의 섬 보길도, 영화 '서편제'의 무대 청산도 외에도 노화도, 횡간도 등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느껴졌다.
상황산, 큰산 등으로도 불리는 상황봉은 이렇듯 봄이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남도 명산이다. 해남 땅끝과 어깨선이 비슷한 데다 2월 중순 이후 빨간 동백꽃이 피기 시작해 한반도에서 가장 빨리 봄을 느낄 수 있다. '빙그레 웃는 섬' 완도(莞島)는 산만 좋은 게 아니라 명소가 즐비하다. 해상왕 장보고기념관과 청해진유적지 외에 드라마 '해신'의 촬영장 또한 볼거리요 산 안의 완도수목원은 동백나무군락지 외에 자생상록원, 희귀식물원 등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는 산교육장이다.
▶산행 길잡이
대야저수지 아래 주차장 원점회귀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주차장~상황봉~하늬재~임도~주차장 코스는 약 9㎞, 4시간 걸리며, 하늬재에서 백운봉~송곳바위를 거쳐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코스는 상황산 면모를 더욱 잘 살필 수 있지만 1시간 30분 정도(약 10㎞) 더 걸린다. 준족(駿足)이라면 섬의 복동쪽과 남서쪽에 위치한 해신세트장을 잇는 숙승봉~업진봉~백운봉~상황봉~쉼봉 종주산행을 시도해볼 만하다(15㎞, 7~8시간). 난이도는 모두 ★★ (별 다섯개 기준)
▶대야저수지 주차장 찾아가기
해남군 북평면 남창→남창교·완도연륙교→13번 국도→장보고기념관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좌회전 두 차례→완도연륙교 방향 300m→에덴농원 진입로→1.5㎞→에덴농원 위 상황봉 주차장
▶완도 활어해산물장터
완도 제2부두 부근의 활어해산물장터는 '골라 먹는 활어시장'이다. 펄쩍펄쩍 뛰는 생선을 플라스틱 함지박에 담아놓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진풍경. 대여섯 명이 5만원 안팎이면 활어와 조개, 낙지 등 갖가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산행을 함께한 토박이―완도 산꾼 김하룡씨
김하룡(金夏龍·60·완도문화원 사무국장)씨는 '상황봉 박사'로 꼽히는 완도 토박이 산꾼이다. 그가 산 안에서 찾아낸 명소와 절터만 해도 수십 개소나 되고 전설은 무려 400개가 넘는다. 김씨는 그렇게 정성을 쏟은 상황봉에 대해 고마워했다. "2005년 30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나와 마음이 공허할 때 꼭 붙잡아준 게 상황봉이었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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