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寬厚長者' 실학자 박세당 선생 여생 보낸 곳
서울시와의 경계에 있는 의정부시 장암동(長巖洞)은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 잡아 평일에도 발길이 붐빈다. 원래 장자리(長者里)와 조암리(鳥巖里) 일부, 동막리(東幕里)를 포함하는 지역이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장자리와 조암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장암리(長巖里)로 이름이 바뀌었다. 장암동 일대에는 조선시대 실학자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 1703) 선생과 관련된 지명과 명소가 많다.
- ▲ 장암동에 있는 서계 박세당 선생의 사랑채./의정부시 제공
의정부시가 발간한 '의정부 지명유래'에 따르면 지금도 남아 있는 지명인 '장재울' 마을은 박세당 선생이 기거하며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면서 생겨났다. 그는 학자로서 명성이 높았을 뿐 아니라 성품이 강직한 반면 너그러워 그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관후장자(寬厚長者)가 사는 동네'라 하여 장자동(長者洞)이 됐는데 발음이 변해 장재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서계 선생은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다 당쟁에 혐오를 느껴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문연구와 저술, 제자 양성에 매진하게 된다. 경기도문화재 자료로 지정돼 있는 서계 선생 사랑채(장암동 197번지)는 조선후기 사대부 건축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6·25 당시 대부분 소실됐고 지금은 바깥 사랑채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북쪽 언덕에는 서계 선생의 묘소도 있다.
또 수락산 서쪽 석림사(石林寺) 계곡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랑을 떠나 처음으로 숨어들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박세당은 김시습의 뜻을 따르고자 청절사(淸節寺)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청절사 터에는 서계의 둘째아들 박태보(朴泰輔·1654~1685)를 모시는 노강서원(鷺江書院)이 들어서 있다. 박태보는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해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되다 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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