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잠실본동이야기]/[수도권2]지명유래

[수도권II] [우리동네 지명유래] [7] 연못이 돼 버린 구두쇠의 집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10. 3. 10.

구리시 '장자못'

구리시 토평동에 있는 '장자못'은 한때 악취가 진동해 지나가는 사람마다 코를 움켜쥐게 했던 썩은 못이었다. 수도권 개발 붐이 일면서 이 일대 17만평의 부지에 5000가구 약 2만4000명이 사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그에 따른 생활하수가 하루 1만4000t씩 고스란히 이곳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물은 까맣다 못해 불쾌한 윤기가 흘렀고, 악취는 눈까지 맵게 만들었다.

구리시에 따르면 이 장자못은 그 이름에 나름의 전설을 갖고 있다. 바로 장자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인색하고 포악한 부자에 관한 얘기다.

구리시 장자못의 현재 모습./구리시 제공

어느 날 장자의 집에 스님이 와서 시주를 요청하자 장자는 외양간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똥을 너까래로 푹 푼 다음 "옜다! 이거나 가져 가라"고 했다. 스님은 고맙다 말하고 쇠똥을 받아 돌아섰다. 마침 근처 우물가에서 쌀을 씻던 장자의 며느리는 스님을 불러 쇠똥을 훌렁 쏟아버리고 씻어놓은 쌀을 한 움큼 떠 줬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날 따라오라. 그리고 집에서 무슨 일이 있든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미천을 지나다 별안간 뇌성벽력이 치며 굵은 비가 막 쏟아졌다. 이때 며느리가 "어이쿠, 장독을 안 덮었네"라며 뒤를 돌아보다가 그대로 돌이 돼 버렸다. 장자의 집은 연못이 됐다.

구리시는 지난 2000년 6월 장자못을 살리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107억원을 들여 장자못에 퇴적 오니를 준설하고, 한강물을 끌어들여 10여일간 담수한 뒤 한강으로 내보내는 순환시스템을 설치했다. 또 연꽃과 갈대, 금불초 등 각종 식물 38만여 그루를 심고 3.6㎞에 이르는 산책로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다리, 나무로 만든 관찰데크 등을 갖췄다.

9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장자못은 장자못호수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지난해 2월 환경부가 지정하는 자연생태복원 우수 마을로 뽑혔다. 연못 둘레엔 창포, 부들, 골풀, 벌개미취, 붓꽃, 새여가리 등이 자리를 잡았고 야외무대에선 각종 음악회와 전시회가 열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장자못이 있다고 확인된 곳만 해도 강원도 태백시의 황지못을 비롯해 100여 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문헌 자료가 희박해 정확히 어디가 장자못 지명설화의 본거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 않는 장자못호수공원처럼 전설은 시간의 흐름에 아련한 정취를 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