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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대통(행운)]/남는얘기

[불상 감상법] 간다라불상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8. 9. 30.

 

간다라불상

그리스 미술(사실적이며 완벽한 신체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여 조각에 표현함.)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보관과 영락·팔찌로 장식한 건장한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른 불상에서 볼 수 있는 관능미는 없다.  세부적으로는 물결 모양의 긴 머리카락과 깊이 파인 눈·날카로운 코·얇은 입술·높고 큰 육계 등을 특징으로 한다.  눈을 반쯤 감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어딘가 우울하며 명상하는 모습과 양어깨를 덮는 통 견의, 매우 사실적인 번파식의 옷주름(큰 주름이 파도치듯 번갈아 연속됨), 옷의 상단의 깃이 목도리처럼 턱 밑에서 한번 뒤집어지며 돌고 있는 것 등이 조형적 특징이다.  그리고 사실적인 역사적 생애를 소재로 불상을 만들었으며 회청색의 편암으로 색감이 어둡고 딱딱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서북쪽의 추운 지방이라는 기후적 특성이 조형양식에 작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배면 조각이 생략되고 정면 조각 위주로 조각을 하였으며 오늘날 우리나라 불상도 그러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  AD 1세기에서 AD 3세기경까지는 편암을 주로 사용하였고, AD 3세기에서 AD 5세기경까지는 테라코타를 많이 사용하였으나 채색이 가해져 한층 우아해진다.

 

요점정리

간다라 불상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 때 소승 불교가 성립되었으며, 기원후 2세기 인도를 재통일한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 때 대승불교로 발전하였다. 아소카 왕(마우리아 왕조)은 정복 전쟁을 전개하면서 불교를 전파시켰으며, 인도 각지에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갈라 불탑을 세웠다. 이것이 탑의 시초이다.

그리고 서북인도(쿠샨왕조 시기) 쪽에서는 그리스미술의 영향을 받아 간다라 양식(1-3세기)이라고 불리는 불교미술이 발전하였는데 1-2세기 경부터 불상이 만들어 진다. 이 간다라(Gandhara) 불상은 얼굴이나 복식이 모두 그리스 신상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 통견(通肩), 샌들, 콧수염 등을 특징으로 한다.

희랍,로마인의 모습 ,머리카락은 곱슬, 이목구비 유럽인 모습, 눈을 반쯤 감고 아래를 처다봄, 우울한 표정,성격이 유약하여 우울 할때 많고 늘깊은 사유,대의는 통견의,신체가 두터운 옷에 가려짐. 옷주름 사실적,대의의 옷주름 표현에 주력,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

마투리불상

중북부 인도의 갠지즈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머리(머리카락이 없이 민밋하게 머리를 표현한 불두)에 하나의 큰 우렁상투를 하였다. 토착적인 인도인의 얼굴에 활짝 뜨고 자신감 있는 미소는 깨달은 다음의 법열과 자신감 있는 생명감이 넘친다.  건강하며 팽만감 있는 신체에 편단우견(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게 걸친 웃옷으로 오른쪽 어깨가 비어 있다.)의 얇은 옷을 신체에 밀착시켜 표현하였다. 간다라 불상은 온 몸을 덮은 대의의 옷주름을 세심하게 표현하였으나, 마투라 불상은 나신을 연상케 할 만큼 신체의 표현에 역점을 두며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더운 지방이라는 기후적 특성이 반영된 간결한 장식을 한 三曲 자세의 약쉬(여성)상이 많으며, 인도 고유의 전생담과 이상 세계를 소재로 많이 채택하였고 32호상과 80종호를 충실히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조각의 재료로는 밝고 부드러운 살색에 가까운 사암(砂岩)을 많이 사용하였다.  부처를 표현하려는 의도만 같을 뿐 도상과 양식 및 재료에 있어서는 간다라 불상과 공통점이 없다. 마투라 불상은 약샤·약쉬상과 더불어 기원전 3세기부터 7세기까지 굽타양식과 연계되어 천년동안 마투라 불상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다. 두 지역의 불상은 3세기경 융합되어 4세기 이후의 굽타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요점정리

비슷한 시기에 북부 인도의 마두라(Mathura) 지방에서는 마두라 양식(1-3세기)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미술이 발전하였다. 마두라 불상은 인도의 전통적 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큰 눈과 건장한 체구를 지니고 있으며 얇은 옷이 밀착된 우견편단(右肩偏袒)을 특징으로 한다.

인도인의 모습,머리는 민머리, 큰 우렁상투, 인도인의 모습, 눈을 활짝 뜨고 자신감있는 미소, 깨달음을 맛보는 희열 활달한 생명감 넘침, 편단우견, 얇은 옷에 밀착 나신의 느낌, 건강하고 팽만감 있음, 신체의 표현에 힘씀 , 인간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표현

굽타불상

 

이목구비는 마투라 불상이며 머리카락은 간다라 양식의 소라머리가 형성되었다.  마투라 요소인 통견에 얇은 천으로 밀착시켰으며, 옷주름은 쿠샨 시대의 마투라 불상 양식을 받아들여 추상적인 가는 선으로 평행하게 표현하였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눈은 반쯤 감고 정신성을 살려서 고요하며 또한 양감이 있어 생명력이 느껴지며 크기는 장대해진다.  동적인 2세기의 불상보다 자비롭고 원만한 상호를 보여주며 불상 숭배 사상이 일어난다.  인도 고전문화가 가장 활발히 꽃 피었던 시기로 중국과 한국에 광범한 영향을 끼친다.

요점정리

그 뒤 굽타 왕조(4-6세기) 시대에 오면 굽타 양식(4-7세기)으로 불리는 새로운 불교 미술이 발전하였다.두양식이 과도기를 거쳐 굽타시대4-5세기 두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 인 불상 양식이 탄생하게 된다.굽타불상의 특징은 이목구비는 마투라양식이지만 머리카락은 두지역이 결합하여 나발형식이 형성된다. 이것이 한국,중국의 불 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마두라 양식을 수용하였으며, 단정하고 조화된 윤곽선, 육감적인 몸체(힌두교 미술의 영향), 둥근 육계와 나발, 둥근 광배(光背), 목의 삼도(三道), 통견(通肩)의 깔끔한 대의(大衣) 등을 특징으로 한다.

굽타 왕조 (320∼550)

  북인도 지방에서 일어난 국가로 대승불교 (중관<中觀>, 유식<唯識>, 여래장<如來藏>, 인명<因明>) 사상이 심화 발전되며 불교를 세계 종교로 완성한다.  한편 힌두 문화가 왕실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침투되어 인도의 보편적인 생활 종교로 자리 잡는다.  마침내 불교는 힌두화되어 인도에서는 불교가 소수 종파로 전락하고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꽃피게 된다.  중국의 구법승 법현 등이 인도 순례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산스크리스트어를 공용어로 채용하여 베다 문학이 널리 성하고 칼리다사같은 훌륭한 시인이 배출되며, 나란다 대학을 설립한다.  또한 아잔타 석굴·엘로라 석굴·산치이 대탑·아잔타 벽화·사르나트 불상 등이 조성된다.  초기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도 고유의 양식이 성립된다.

  ☞ 인도 왕조의 변천 : 마가다국(BC 6세기 ∼ BC 4세기) → 마우리아 왕조(BC 4세기 ∼ AD 2세기) → 쿠샨 왕조(AD 1세기 ∼ AD 4세기) → 굽타 왕조(AD 4세기 ∼ AD 6세기)

   이목구비는 마투라 불상이며 머리카락은 간다라 양식의 소라머리가 형성되었다.  마투라 요소인 통견에 얇은 천으로 밀착시켰으며, 옷주름은 쿠샨 시대의 마투라 불상 양식을 받아들여 추상적인 가는 선으로 평행하게 표현하였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눈은 반쯤 감고 정신성을 살려서 고요하며 또한 양감이 있어 생명력이 느껴지며 크기는 장대해진다.  동적인 2세기의 불상보다 자비롭고 원만한 상호를 보여주며 불상 숭배 사상이 일어난다.  인도 고전문화가 가장 활발히 꽃 피었던 시기로 중국과 한국에 광범한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