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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본동이야기]/송파 이런저런소식

[기자수첩] AI에 '걸린' 부동산 투기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8. 5. 12.
 
[기자수첩] AI에 '걸린' 부동산 투기
 
▲ 곽수근
 
11일 밤 서울 송파구 택지개발예정지 문정·장지지구에 방역기구로 중무장한 공무원 200여명이 들이닥쳤다. 이곳 비닐하우스에서 은밀히 사육되던 오리에서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이 확인됨에 따라 닭과 오리 8000여 마리 모두를 살(殺)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닭이나 오리를 이용해 '한몫' 잡으려던 '부동산 투기꾼'들의 허망한 꿈도 사라졌다.

이곳의 '진상'은 지난 6일 서울에서 첫 AI가 발생한 뒤 대책 마련을 위해 각 구(區)마다 조류 전수조사를 벌이면서 드러났다. 송파 문정·장지지구에는 작년 여름부터 무허가 비닐하우스를 짓고 그 안에 몰래 닭과 오리를 키우는 가구가 하나 둘씩 늘어 33가구가 됐고, 여기서 키우는 닭과 오리도 최근 8000마리를 훌쩍 넘었다. 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갑자기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축산농가로 인정 받아 택지개발에 따른 손실을 보상 받고, 상가 입주권 등을 받기 위해서였다. 서울시는 "보상법령에서 닭은 200마리, 오리는 150마리 이상 키우면 축산농가로 인정받는 점을 노려 상당수 부동산 투기꾼들이 무단으로 가축 사육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300㎡ 이상 공간에서 닭·오리·소 등을 키우면 구청에 축산업 등록을 해야 한다는 축산법령을 피하기 위해 손바닥만한 비닐하우스 안에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이 닭·오리들을 한꺼번에 몰아넣어 키웠다. 돼지나 소보다 빨리 자라고 키우기 쉬운 가금류나 꿀벌 등이 선택됐다. 문정·장지지구의 한 주민은 "작년부터 동네에 벌이 부쩍 많아져서 다니기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보상을 노리고 비닐하우스에서 몰래 키우던 것이었다"며 허탈해 했다.

이들은 이날 자식 같은 닭·오리를 AI 때문에 모조리 땅에 묻은 축산 농민들과는 또 다른 이유로 땅을 쳤다. 영호남, 충청을 거쳐 서울까지 상경한 AI는 도시의 '사각지대'에 몰래 숨어 불로소득을 노리던 부동산 투기꾼들의 '꼼수'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역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