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제예술문화연구소
百濟一日一史
부여의 백제예술문화(扶餘의 百濟藝術文化)
은산리
마을이 은산면 읍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행정적 중심지로 은산시장, 은산별신당으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북쪽은 은산천이 흐르는 야산과 평지이다. 그리고 남쪽은 넓은 들로 조성된 지역이다.
백제 때는 사비군에 신라 때는 부여군에 속했었다.
백제 때의 백제군과 나당 연합군의 격전지였음은 은산 별신굿의 원인으로도 짐작이 가며 규암면 합정리 도무재 울성 싸움에서 마지막 한사람까지 성을 버리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한 백제군이 은산을 중심으로 한 은산사람들이었다는 전설을 통해서도 은산은 백제때 큰 마을과 군사가 주둔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백제 멸망 후 한촌으로 변한 이 지역은 고려 때에는 공주군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부여현 방생면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부여군 방생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에 이인도찰방에 딸린 은산역이 있었으므로 은산 또는 은산역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산직리를 병합하여 은산리라 하였다.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은산별신제가 유명하여 별신당 앞에 1990년 은산별신제 전수회관(137평)이 건립되었으며 격년제로 별신대제가 거행되고 있다.
연마을명은 1960년대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하여 신흥동.버들, 옛날에 산지기가 살던 마을이라하여 산징말. 산직리, 산허리에 자리한 마을이라하여 선허리.산허리, 산 아래에 몇 호 있으므로 은산(隱山)이라 불리다가 그 후 역말이 생겨 역으로 인해 덕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은산(恩山)이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문화재로는 은산 별신제(恩山別神祭:중요무형문화재 9호, 은산 당산성(堂山城:충남기념물 153호, 은산리 선사유적이 있다.
은산별신제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로
1966년 2월15일 지정 은산면에 소재되었다.
은산별신제는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마을 사당인 별신당에서 열리는 제사를 말한다.
옛날 은산 마을에 큰 병이 돌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갔다. 어느날 밤 마을 어른의 꿈에 백제를 지키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 나타나 병을 없애 줄테니, 자신과 부하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 장군이 말한 곳으로 가 보니 오래된 뼈가 잔뜩 널려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뼈들을 잘 묻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굿을 했다. 그 후 병이 사라졌고,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마을사람들은 장군과 병사들을 위로하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왔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은산별신제이다.
그 때부터 마을 주민들이 산제당 벽에 백제부흥군의 장수인 복신장군과 토진대사의 영정을 걸어 놓고 산신제와 더불어 위령제를 지냈고, 언제부턴가 그 규모가 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별신제는 3년에 1번씩 1월 또는 2월에 열리고, 보통 15일동안 약 100여 명의 인원이 참가한다. 제사에 앞서 마을 어른들은 제사를 준비하는 임원을 선출한다. 임원은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대장, 중군, 패장, 사령 등 군대조직의 이름으로 불리워지는데 이것은 은산별신제가 장군제(將軍祭)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제물을 준비하는 화주(火主)는 제물에 부정이 타지 않도록 조심하고, 제사에 쓰일 우물에 멍석을 덮고 주위에 금줄을 친 후 노랗고 검은 흙을 뿌려 부정의 접근을 막는다. 마을 장승 옆에 세워 둘 나무를 베는 ‘진대베기’를 하고, 신에게 올릴 종이꽃을 만들어 제물과 함께 당집으로 향하는데 제물을 나르는 사람들은 부정을 막기 위해 입에 백지를 문다. 제사는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데, 무당이 굿을 한 후 마을로 내려와 마을의 번영을 위해 거리제를 열고 마을 동서남북에 장승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대규모 행사답게 의상, 소도구, 장비가 다양하게 동원된다.
은산별신제는 백제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는 향토축제이다.
은산당산성
충청남도 기념물 제153은로 2000년 1월 11일 지정되어
은산리 산 1-1에 소재된다.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에 있는 해발 60m의 낮은 산봉우리를 둘러 싼 토성으로, 안쪽의 내성과 바깥쪽의 외성으로 구분된다. 토성은 흙으로 성벽을 쌓되 산비탈의 자연적인 경사면은 더욱 가파르게 깎아 성벽으로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성 둘레는 내성이 약 180m이고 외성이 약 250m이다. 외성은 대부분이 개간되어 평지화 되었으며, 내성은 흙으로 쌓은 형태가 부분적으로 남아있고, 북쪽에는 너비 5∼6m의 물길인 도랑이 있다.
산성의 서남쪽 기슭 암벽 아래에는 별신당이 있는데, 백제부흥운동군과 관련된 은산별신제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박물관 부여군지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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