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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정(고향)소식]/부여군 지리

[찾아가는 부여 마을 문화] <호암리>정찬응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5. 5. 2.

.[찾아가는 부여 마을 문화] <규암면/호암리> 정찬응

사)백제예술문화연구소
百濟一日一史
부여의 백제예술문화(扶餘의 百濟藝術文化)
범바위 호암리
규암면의 동북쪽에 위치해서 대부분 평탄한 지형으로, 북동쪽에서 활처럼 휘어져 남서쪽 방향으로 금강이 지나가고  북쪽으로는 칠갑산의 지천(之川)이 금강이 유입하고 남쪽으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서쪽의 옥천산(玉泉山) 아래쪽에 야산지대와 들을 경계로 하여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길고 넓은 면적을 차지한 지역이다.
특히 최근 백마강교가 놓여 부여읍 정동리와 연결 접근이 용이해졌다.
백제 때는 사비군(泗沘郡)에, 통일신라 시대에는 부여군(扶餘郡)에 속했다.
강변지역으로 백제시대에는 인류가 이미 정착하였고 백제가 부여로 천도하고 천정대가 있으며 뱃길과 나루가 있어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공주 군에 속했으며 조선 초기에는 부여현 도성면(道城面)의 지역이었다가 조선 말기에는 현이 군으로 바뀌며 부여군 도성면의 지역으로서 되었고 뒷산에 마치 호랑이와 같은 바위가 있으므로 범바위 또는 호암(虎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군 통폐합에 의해 상호암리(上虎岩里)와 하 호암리(下虎岩里)를 통합하여 호암리라 하여 규암면에 편입시켰다.
유적으로는 천정대(天政臺), 호암 사지(虎岩寺址)가 있으며 범바위라는 자연부락과 지명이 있으며 전설로는 천정대의 임금바위 신하바위가 있고 성재산에 남매바위가 있다.
천정대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49호로 1984년 7월 26일 지정되어 호암리 산 5번지 소재되었다.
백제 때에 재상을 선출하던 곳이다.
고대에서부터 신성시해온 성스러운 곳으로, 부소산 취령봉 꼭대기의 범바위(호암)라 부르는 넓적한 암반, 근처 절벽 아래에 있는 임금바위, 신하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솟아 있는 이 일대를 천정대라 칭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천정대를 ‘정사암(政事岩)’이라 불렀는데, 이는 나라에서 재상을 뽑을 때, 3∼4명의 후보 이름을 적어 상자 안에 넣어두고 며칠 후 열어보아 이름 위에 도장이 찍힌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임금바위, 신하바위 위에서는 임금과 신하가 각각 하늘에 제를 올리고 기원했다는 전설도 같이 전하고 있다.
하늘을 받들고 섬기던 부족사회로의 풍습이 백제 때에도 여전히 남아 재상임명 등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천정대와 임금바위 신하바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에 있는 천정대(天政臺)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에는 백마강(白馬江)을 따라 ‘범바위[虎巖]’라고 부르는 바위산이 있다. 호랑이 모양을 한 바위산에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강변에 길게 병풍처럼 늘어져 있는데, 임금바위를 중심으로 신하바위, 군사바위, 보초바위 등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주민들은 임금바위를 천정대로 인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천정대를 ‘정사암(政事岩)’으로 부르며, 천정대가 백제의 재상을 선출한 신성한 장소였음을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정사암 고사에 의하면 천정대의 위치는 규암면 호암리에 있는 호암사(虎巖寺) 안에 있었다고 한다. 재상을 뽑을 때 마땅히 뽑아야 할 서너 명의 이름을 써서 함에 봉한 후 바위 위에 놓아두었고 전한다. 나중에 함을 열어 이름 위에 인적이 있는 자를 재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재상 선출 때에는 일정한 의례 절차를 거침으로써 선출된 사람에게 신성성을 부여하고, 귀족들의 합의에 의하여 선출되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정사암은 재상 선출 등 중요 국사가 논의된 신성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천정대의 기능과 관련하여서도 여러 설화가 전하고 있다. 하늘에서 정사를 정하여 주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백제 왕이 피신하였던 곳이라는 이야기, 군사들이 파수를 본 곳이라는 이야기, 기상을 관측한 곳이라는 이야기 등 10여 가지의 다양한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