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부여의 마을 문화] 정찬응
사)백제예술문화연구소(社団法人百済芸術文化研究所)
부여일일일사(扶餘一日一史)
<구아리>
부소산의 남쪽으로 마을 북서방향으로 금강이 지나가고 있고 대부분의 지대가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조선 초기에는 부여현 현내면의 지역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홍문리, 흑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구아리라 하였다.
부여 시가지의 중심가이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부여시장이 있다.
한때 구아 2리와 3리에 싸전 채소전 가축 전과 나무 전 등 있어 5일장이 서 이곳에서 현재 고교리로 이전하였다.
백제 때부터 도성 내 중심지이며 이후도 백성을 다스리는 관청이 있었던 지역이다.
백제 멸망 후 중요지역으로 부여에서 가장 타격이 심했던 유민들의 이동으로 한 때 마을이 폐허화된 모습으로 가장 크게 변한 지역으로 손꼽을 만하다. 구 부여경찰서 자리가 백제 때 천왕사(天王寺) 절터였음을 확인시켜 주는 기와 파편과 백제시대의 정(井) 자형 우물이 발굴되었으며,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공원을 조성하였다.
지금도 구아리를 홍문거리, 옥 터(옥뒤), 절터 등으로 부르고 있다.
《석련지와 백제탑이야기》
옛날 백제에 한 늙은 석공이 살고 있었다. 똑같은 돌이라도 석공의 손을 거치면 돋보이게 되므로 솜씨가 소문이 나서 궁궐에서도 불러 일을 맡겼다. 왕이 석공에게 자신이 연꽃을 좋아하니 침실 앞에서 항상 연꽃을 볼 수 있도록 돌못[석조(石槽)]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왕의 말을 들은 석공이 곧바로 돌못을 만들어 왕의 침실 앞에 놓은 뒤 연꽃을 옮겨 심었다. 왕은 돌못에 핀 연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 뒤 의자왕(義慈王)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는 연꽃이 더욱 탐스럽게 피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나라군이 쳐들어와서 백제가 멸망하게 되었다. 이때 사비성(泗沘城)을 점령한 장수가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라는 장수였다. 소정방이 사비성을 점령하고 나서 석공을 불러 ‘대당평제국비명(大唐平濟國碑銘)’이라는 글씨를 석련지(石蓮池)에 새기라고 하였다. 석공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집에 돌아왔고, 부소산(扶蘇山)에 올라 백제 궁궐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겼다. 며칠 뒤 석공은 소정방의 부름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궁궐로 들어갔다. 그리고 석련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글씨를 새기기 위하여 망치를 들었다. 석공이 망치로 돌을 두들기는데 돌소리가 아니라 쇳소리가 나더니 망치가 튕겼다. 매우 이상하여 다시 한번 망치질을 하였는데 망치 끝에서 불꽃이 튀기더니 끌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석공은 소정방에게 돌아가 돌이 단단하여 글씨를 새길 수 없다고 전하였다. 석공의 말을 들은 소정방의 부하가 석공의 말이 사실인지 보려고 똑같이 망치를 쳤으나 불꽃이 튀며 망치가 튕겨 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소정방이 석공에게 이번에는 백제탑(百濟塔)에 글씨를 새기라고 명하였다. 석공은 백제탑에도 감히 글씨를 새길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탑 앞에 와서도 망치를 대지 않았다. 석공은 망국의 신세를 한탄하며 탑 앞에 주저앉았다.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고 비가 오기 시작하였지만, 석공은 탑 앞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비가 세차게 퍼붓자 석공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결국 석공은 탑 앞에 앉은 채로 목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의견)
지질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최근 우리나라의 서해안이 계속 융기되고 있는데, 1900년대 초에 비하면 지금은 약 3~4m 정도 융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백제시대 당시의 부여 지형을 얘기할 때는, 이 점을 감안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답변)
우리 부여도 사비기 백제문화재인 유구가 지하 평균 6m 정도 아래에서 발굴 수습되고 있어 사비기 보다 6m 정도 높아졌다는 결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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