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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시감상 02 [김종삼의 墨畵]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1. 7. 20.
[시감상. 02]
김종삼의 [묵화墨畵]
 
묵화(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감상>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른 사람의 처지와 같은 경우에 두어 그 사람의 미음과 행위를 생각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민의 정은 어떠한 강요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는개가 온몸의 옷을 적시어 가듯이 소리도 없이 조금씩 젖어드는 것입니다. 서로의 주고받는 정으로서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마음이 권좌에 있는 사람의 행위로 베풀어졌다면 그것은 가장 위대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민의 정을 이야기하다 보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엽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 시작품을 살펴보노라면 ‘황소’와 ‘할머니’의 모습에서 바로 그런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달픈 삶을 서로 위로해주는 듯합니다. ‘할머니’란 그 이름으로부터도 포근합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활기를 잃어버리고 쓸쓸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주어진 고달픈 삶을 묵묵히 인내하고 있는 ‘황소’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달픈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발잔등이 부었다고’, ‘적막하다고’ 하는 등에서 같은 처지임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서일까, 할머니가 ‘물 먹는 소 목덜미’에 손을 얹는 바로 그 동병상련의 모습은 마음속에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인생의 온갖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걸어온 할머니의 이미지와 고달픈 생애를 견디어온 소의 이미지가 고적孤寂한 분위기를 이루면서 마음속에 한 폭의 그림을 그려지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 칼라의 화려한 그림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한, 그러면서도 포근하고 끈적한 정을 느끼게 하는 한 폭의 「묵화墨畵」를 연상시키고 시작품입니다. 시는 인생의 참 의미 전달이나 어떠한 주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 편의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또 다른 시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기도 합니다. 한 편의 시는 이렇게 마음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감각적 영상映像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곧 이미지, 심상心象, image으로서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이란 것입니다. 그 속에 한 인생의 일면이 있는 것이지요.
 
▶김종삼(金宗三. 1921.03.19 황해 은율~1984.서울). 6·25전쟁 뒤 모더니즘 시인으로 주목받았다. 평양 광성보통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중단하고 일본 도요시마[豊島] 상업학교를 마쳤다. 유치진에게 연극을 배우고 음향효과를 맡아보기도 했다. 6·25전쟁 때 월남하여 피난지 대구에서 시 〈원정園丁〉을 발표하고 이어 1951년〈돌각담〉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피난민의 뿌리 뽑힌 삶과 허무를 노래했는데 비약적 상상력과 뜻밖의 어구를 연결하여 난해한 이미지를 만들고 시어의 음향효과를 높이려 했다. 이런 시정신은 전봉건·김광림과 펴낸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1957)〉, 문덕수, 김광림과 펴낸 〈본적지(1968)〉에까지 이어졌으며 전쟁 때문에 파괴된 삶을 그린〈민간인(1971)〉으로 1972년 현대시학작품상을 받았다. 그 뒤에는 세계와의 불화 또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잃어버린 데서 나타난 정신적 방황을 노래했다. 이 방황은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기나긴 역정歷程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보헤미안적 시인이라고도 불렀다. 또 그의 시를 '여백의 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행의 과감한 생략과 비약으로 불완전한 문장과 불안한 문체를 통해 '여백'이 가지는 미적인 효과를 높이려 했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익숙한 정서를 지워버리거나 독특한 질서로 바꾸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그리려 했다. 즉 시의 기법을 통해 비어 있는 세계를 깨닫게 하고 독특한 미를 창조하려 한 것이다. 그 뒤에도 이 생각은 이어져 소박한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발전했다. 시집으로 〈십이음계(1969)〉·〈시인학교(1977)〉·〈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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