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신발은 빨 수 있잖아요!♡♡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1. 7. 14.
♡♡신발은 빨 수 있잖아요!♡♡

오늘도 아이의 말을 통해
배웁니다​.

정말 오랜만에 아이에게 새 운동화를 사주었다.
두 해 정도는 새 신을 사지 않아도 거뜬히 버틸 만큼 지인들에게 선물 받고 물려받은 것이 많아서 그동안은 집에 있는 것을 부지런히 신겼었다.

파랑과 분홍색이 섞여있어 마음에 든다고 하는 아이만큼 새 신을 신은 아이를 보는 내 기분도 좋았다.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괜히 노래를 흥얼거리고 아이 팔을 신나게 흔들면서 기분 좋은 티를 내보았다.

매일 아침 유치원 등원 의식이 되어버린 '논에 사는 올챙이와 개구리의 안부 살피기'.
마치 연세 많은 어르신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안부를 묻고 살피는 것처럼 아침마다 아이의 발걸음과 시선은 진지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새 신발을 신은 오늘은, 그 논을 그냥 모른 척 지나가주길 내심 바랐건만 역시 그건 나의 바람이었을 뿐.

"어? 엄마! 올챙이들이 물 밖으로 나와있어요. 비상 비상 비상!"

"아이코, 해님이 너무 뜨거워서 어제 보다 논에 물이 많이 줄어서 그런가 봐. 어서 유치원 가자. 준아"

"엄마, 올챙이 구해주고 가야지요. 올챙이 엄마랑 친구들한테 보내줘야 해요."하며 서서히 논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으악~ 준아. 거기 진흙이야. 들어가지 마. 신발이 빠질 수도 있어."

솔직한 마음은
'엄마는 준이 새 신발 더러워지는 거 싫어. 제발 가까이 가지 말고 유치원이나 가자'였다.

"괜찮아 엄마~ 조심조심 들어갈게. 그리고 신발 빠지면 엄마가 빨아줘~~~"

논과 시멘트 바닥의 경계턱에 쪼그려앉아 팔을 뻗을 때마다 휘청거리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하나, 둘, 셋, 넷...

한자리에서 일고여덟 마리 올챙이 떼를 논으로 슈웅 날려보내주길래
"자~ 이제 됐다! 가자. 일어~서" 했더니 아직 남아있단다.
더 안쪽으로 서너 마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게 보였다.

아, 거기까진 제발!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아이를 말릴 길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지켜만 보았다.

질~퍽.
으윽!
새하얀 신발 밑창에 진흙 도장이 제대로 찍혔다.

"휴우, 이제 다 됐다. 엄마! 올챙이 엄마랑 친구들이 이제 슬퍼하지 않고 행복해하겠지?"라며 진흙 묻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세상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올챙이와 개구리를 집에 데려가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매번 내가 하는 말을 아이는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따라 말한다.

유치원 입구를 들어서는 아이의 발걸음이 유쾌하고 가볍다. 이렇게 좋은 것을!

현관에 계신 마중 선생님께 올챙이 열두 마리 구해주고 왔다고 목에 힘주어 말하는 아이가 영웅처럼 빛나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이에게 나의 속내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아서,
강제로 아이 팔을 잡아끌지 않아서,
살려주지 못한 올챙이에 대한 억지스러운 변명을 두고두고 늘어놓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오후 수업에서 만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오늘 아침 아이와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숨도 안 쉬고 바로 그런다.

"선생님, 신발은 더러워지면 빨 수 있지만, 올챙이는 그때 안 구해줬으면 죽잖아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올챙이 구해주는 거니까 준이 생각과 행동이 맞아요. 아주 멋진 행동이었다고 칭찬해 주세요! 알겠죠?"

선생님이 속으로 싫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겉으로 조금 티 냈던 거 선생님도 반성했다고 바로 이실직고했다.

6살 아이도, 13살 학생도 잘 아는 그 사실을 엄마인 나는 빨면 다시 깨끗해지는 운동화를 지키고 싶어서 외면하려 했구나. 모른체하고 싶었구나.

흐려지고 무뎌지는 내 안의 순수한 마음 씨앗에 주기적으로 물과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 아이들은 진정 작은 거인이요, 스승이다.

내가 그나마 순수할 수 있는 이유!

좋은하루♡♡♡

'[나의 이야기] > 최규학·시집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걸 아낍니다.  (0) 2021.07.21
시감상 02 [김종삼의 墨畵]  (0) 2021.07.20
호태산 수사자  (0) 2021.07.10
참! 좋은아침!  (0) 2021.07.08
金鍾鎭先生長逝 二首/  (0) 202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