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최규학·시집만들기

작은 돈의 행복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20. 12. 18.
작은 돈의 행복

최규학

그 초등학교의 한팔쯤 되는 곳에 잉어빵 굽는 곳이 있습니다
빵틀 상자에는 맛있는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오천만의 대표 주전부리"
"부드러우면서 맛있는 슈크림 잉어빵"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어요"
하교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튀밥처럼 터져나와 코스모스처럼 줄을 섭니다
갈대 할아버지와 억새 할머니도 끼어 있습니다
카드는 받지 않습니다
신사임당도 사절입니다
슈크림 잉어빵은 천원에 두마리
팥 잉어빵은 천원에 네마리입니다
아이들은 천원 한 장을 태극기처럼 들고 있거나
오백원짜리 또는 백원짜리 동전 몇 개를 보석처럼 쥐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이 운동회 때 출발선에 선 선수 같습니다
아주머니도 심판 선생님처럼 손놀림이 민첩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보다 아주머니를 더 좋아하는 듯 보입니다
아주머니도 내새끼처럼 아이들을 챙깁니다
나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어느 뱃사공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우연히 이 무릉도원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곧 그곳의 주민이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첫째는 잔돈이 없어서 입니다 내 지갑에는 체크와 오만원권 지폐가 들어 있습니다
들째로 나는 아이들 틈에 끼어서 기다릴 시간과 용기가 없습니다
나는 천천히 지나치면서 작은 돈의 위력을 깨닫습니다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큰 돈이 아님을 피부로 체험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나는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 했을 때처럼 황홀합니다
행복한 잉어빵 가게를 바라보며 나도 행복에 젖어 가슴이 풍선처럼 부풉니다
잉어빵은 작은 돈으로만 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나의 이야기] > 최규학·시집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붙어있는 낙엽 / 최규학  (0) 2021.01.08
해와 달 /최규학  (0) 2021.01.01
작은 풀  (0) 2020.12.11
엄마의 눈빛  (0) 2020.11.27
소나무 옆에서 / 최규학  (0) 2020.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