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법정스님이 남긴 저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1971년 3월 < 현대문학 > 에 쓴 글에서 법정 스님은 어떤 스님한테서 선물받은 난초 두 뿌리를 정성스레 기른 얘기를 하면서 거기에 일희일비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친구에게 줘버린 뒤 비로소 그 몇 년간의 집착에서 벗어난 얘기를 썼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이 짤막한 에세이에 붙은 '무소유'라는 제목은 이후 법정 스님의 일부, 어쩌면 그 자체가 됐다. 1976년 4월 이 글이 포함된 에세이집 < 무소유 > 가 출간됐고 그야말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스님의 이 첫 책은 이제까지 모두 179쇄를 거듭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다.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이 책을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2001년 샘터사에서 낸 스님의 9권짜리 전집 중 첫 책인 < 서 있는 사람들 > 은 1978년 무렵에 처음 찍어낸 책인데, 23년 만에 낸 그 개정판 서문에 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1970년대 그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할 말을 할 수 없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숨막힌 때였다. 글 한 줄을 쓰려면 활자 밖의 행간에 뜻을 담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다. … 책에 실린 글들에서 내 40대의 펄펄한 기상이 엿보여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몇몇 친구들은 긴급 조치에 걸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입적을 예감했음인지 스님은 2008년 말에 < 아름다운 마무리 > 라는 산문집을 냈다. 이 산문집을 낸 문학의숲 출판사는 지난해 스님의 법문들을 묶은 < 일기일회 > 와 <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 도 출간했다. 스님이 펴낸 책은 모두 20여종에 이르며 그중 상당수가 변함없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다.
스님은 대중적 문필활동의 시작을 알린 '무소유'에서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스님은 사유의 향기가 밴 책들만 남기고 빈손으로 떠났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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