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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생생화보]/추억만들기

[스크랩] ★ 국모 육영수 여사님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9.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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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초등때 졸업 사진

(1939. 1. 1)



배화여고 시절의 육영수(오르쪽에서 두번째)



배화 여고 시절 고 육영수 여사님





광부들과 함께 고 육영수 여사님



불우 아동들고 함께...



장병들을 위로 하는 고 육영수 여사님



나환자촌을 방문한 고 육영수 여사님



교도소를 방문 하시는 고 육영수 여사님...



가난하고 병든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진심으로 그들을 도우려고 애썼던
육영수 여사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한국인의 여성상은
신사임당과 육영수로 대표된다. 육영수 여사가 역대
여느 영부인들보다 국민들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데에는, 아무리 가난하고 천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도 차별하지 않았던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실천 때문일 것이다.




아들을 월남에 보내고 홀로 지내는 파월장병 가족을
찾아 위문품을 전달하며 위로하는 육여사



나환자촌을 방문한 여사는 뭉그러진환자들의 손을
거리낌없이 감싸 잡았을 때 환자촌은 그만 감격의
울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이날 청와대에 돌아왔을 때 대통령께서는 고귀한
것이라도 만지듯 영부인의 손을 꼭 감싸주셨다.
여사는 이렇게 전국 나환자촌을 골고 루 방문하고
그들의 자활 사업을 지원하였다.




1938년 4월, 당시 서울로 유학을 온 육영수는
배화여자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으며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하여 수예와 재봉질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만군과 함께...



식목일날 자녀들과 함께 묘목을 심고 있는 육여사



육여사의 사랑과 봉사의 전시은 남달라, 항상
헌혈운동에 앞장 서곤 하였다.






노인들을 공경하고 위로하는 일에 여사는 언제나 앞장서
주었다. 가 "많이 잡수세요", "많이 드시고 건강하세요"
이런 정겨운 말 한 마디 노인들을 얼마나 감동케 했을까.
소매를 걷어 올리고 평범한 가정주부와 마찬가지로 노인들의
시중을 드는 여사의 서민적인 인간미.






노인들을 위하여 경로 잔치를 열고, 음식을 대접하는 육여사



양지회가 마련한 수재민 돕기행사에 초청인사로
참석한 박대통령이 입구에서 육여사와 다정하게
악수를 하고 있다.




1950년 12월 12일의 박정희-육영수 결혼 사진



학창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앞줄 가운데)



강릉에서 박정희 대령이 찍은 군복 차림의 육영수



서독 방문중 환영식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육영수 여사



박대통령과 함께...



"호남쪽에 방금 비가 내렸대요" 육여사가 대통령에게 귓속말로,
오랜 가뭄에 시달리는 호남 지방의 단비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당동 난민촌 방문(1967년 4월 13일, 사당동)




대전 공설 운동장에서 연설을 마친 대통령에게
육여사가 한 농부의 진정서를 전해주고 있다.(1966.9.30)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불우한 처지를 서러워 해주신 분
인정의 샘물이 언제나 가득차 있었기에 국민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이고 고아원, 시장, 불우한 가정 등
서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나 그들의 생활을 살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분...




아 ~ 세월을 돌이킬수만 있다면...다시 한번 그분 뵙고 싶습니다.

출처 : 흰 구름 처럼
글쓴이 : 고덕산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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