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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대통(행운)]/남는얘기

‘명동의 십자가’ 내려놓고 국민가슴에 묻히다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9. 2. 20.

 

‘명동의 십자가’ 내려놓고 국민가슴에 묻히다

한겨레 | 기사입력 2009.02.20 19:40

 

[한겨레] 1만여명 명동성당 가득…끝내 울음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 찬송가속 영면


하늘도 구름 틔워…무덤가 환한 빛 장관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낸 날, 온 나라는 하얗게 울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만여 인파는 새벽부터 서울 명동성당을 가득 메웠다. 영하의 기온과 매캐한 황사도 애끓는 추모 물결을 꺾지 못했다.

장례미사 20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1시간45분 동안 엄숙하게 진행됐다. 전국에서 올라온 사제와 신자, 내·외빈 900여명이 좌석을 빼곡히 메웠다. 김 추기경의 관이 놓인 제대 바로 앞에는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장례위원회가 특별 초청한 이들이다. 눈을 감고 합장한 채 기도문을 외우거나, 멍한 시선을 관에 고정한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성전은 고요했다.

교황의 특사 자격으로 미사를 집전한 정진석 추기경과 주교단 20여명이 가톨릭 합창단의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제대 앞에 섰다.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을 위해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합시다." 정 추기경이 미사의 시작을 알렸다. 미사는 성경의 지혜서와 마태오복음 등을 읽는 '말씀 전례'에 이어 정 추기경의 강론으로 이어졌다. "사랑과 나눔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 주셨기에 한 가닥 희망을…." 강론이 진행되는 동안 곳곳에서 흰 면사포를 쓴 신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김수환 추기경 떠나는 날]


작별 예식이 끝난 뒤 고별사가 이어지면서 흐느낌은 더 커졌다. "지난 반세기 동안 추기경께서 저희 곁에 있어서 참 행복 …."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한홍순 회장은 고별사 도중 입술을 깨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몇몇 유가족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 내어 통곡했다. 곳곳의 청중들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별사가 끝나고 정 추기경이 관 주위를 돌며 분향을 하고 성수를 뿌리기 시작하자 성당은 일제히 울음바다가 됐다. 성당 앞마당은 이날 새벽부터 몰려든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신자들은 찬 바닥에 앉아 대형 모니터에 비친 장례미사 광경을 망연히 바라봤다. 쌀쌀한 날씨에 황사 바람이 거셌지만 추모 열기를 꺾지 못했다. 이날 명동성당 안팎에는 줄잡아 1만여명이 운집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운구 오전 11시45분께 추기경이 안치된 삼나무관은 성당 앞마당 운구차로 옮겨졌다. 십자가를 앞에 세우고 김 추기경의 영정을 앞세우고 사제 8명이 관을 들고 대성전 주출입구를 빠져나오자 성당 앞에 모여든 추모객들은 일제히 울먹이며 통곡했다. 한 50대 여성은 "추기경님,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라며 널브러져 통곡했다. 전날 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60대 노인은 두 눈이 눈물로 그렁그렁한 채 "안 돼, 안 돼"라고 중얼거렸다. 고인의 관이 한발씩 운구차 쪽으로 나아갈 때마다 통곡 소리는 높아졌다.

40년 정든 명동성당을 떠난 고인의 주검은 정오께 경기 용인의 성직자 묘역으로 향했다. 운구 차량 행렬은 명동성당을 나서 한남대교~양재나들목~판교나들목~신갈나들목을 지나 1시간15분 만에 묘역에 도착했다. 경찰은 대통령 이·취임식 등 국가 행사에 쓰이는 오픈카 2대와 사이드카 13대를 배치해 장례 행렬을 인도했다.

오후 1시15분께 검은색 리무진이 맨 앞에 선 운구차 행렬이 성직자 묘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운구차 옆으로 두 겹으로 선 조문객들은 경건히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묘역에는 아침 일찍부터 2000여명의 추모객이 모여들었다. 고인의 주검이 묻힐 묘지로 운구가 진행되는 동안, 추모객들은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며 뒤를 따랐다. 일부 추모객들은 고인의 마지막 길이 아쉬운 듯 관을 쓰다듬기도 했다.

하관·안장 하관 예절은 오후 1시30분께부터 진행됐다. 정 추기경이 성수를 뿌린 뒤 관이 봉분 앞 거치대에 놓였다. 묘지 관리원 6명이 세 줄의 하얀 광목천에 의지해 관을 봉분 밑으로 내려놓는 순간, 추모객들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고인의 유족과 비서 신부와 수녀 등이 돌아가며 성수를 뿌리고 삽으로 흙을 떠 관 위에 뿌렸다. 추모객들은 입을 모아 기도문을 반복해 읊조렸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우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김수환 추기경이 고단한 몸을 누인 봉분 뒤편으로는 미소짓고 있는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담긴 펼침막이 걸렸다. 거기에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관 예절에 참석한 이명진(율리안나·38)씨는 "소가 죽어서 자기의 모든 살과 피를 나눠 주듯이 추기경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선물로 나눠 주셨다"며 "그 마음은 사랑, 겸손, 절제"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모든 예식이 끝나고 성직자 묘역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라는 찬송이 울려 퍼졌다. 희뿌연 하늘이 개면서 한평 남짓한 봉분 위로 옅은 햇살이 비쳤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