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33) 동해 댓재~두타산
[서울신문] 여름이 끝물이지만 맹위를 떨치는 늦더위에 시원한 계곡이 간절해진다. 여름 산의 보물은 계곡 말고도 높은 능선에 있다. 1000m가 넘는 산은 서늘한 공기를 내뿜고, 길섶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한다. 여름이 가기 전에 두타산(1353m)에 올라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을 감상하고 그 유명한 무릉계곡에 발을 담가 보자.
●백두대간 종주로 알려진 댓재 길
강원도 동해시의 두타산은 바다 가까이 백두대간 능선이 흐르는 구간이다. 두타산 하면 무릉계곡을 품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1300∼1400m급 웅장한 능선과 온갖 야생화와 약초가 그득한 곳이다. 그래서 여름철 능선과 계곡을 모두 즐기는 산행지로 그만이다.
산행 코스는 댓재에서 출발해 두타산까지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고, 하산 길에 무릉계곡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산행 들머리인 댓재(810m)는 백두대간 산꾼들만 찾는 곳이었는데, 두타산 등산객들이 몰리면서 제법 사람들이 늘어났다.
댓재 산신각 옆을 지나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여기서 두타산까지는 6㎞ 남짓, 시간은 2시간30분쯤 걸린다. 원시숲이 내뿜는 달고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30분쯤 가면 작은 봉우리 햇댓등에 올라붙는다. 햇댓등 부근에는 유독 밑동 굵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득하다. 춘양에서 보았던 금강소나무처럼 미끈하지는 않지만 굵고 단단해 보인다. 사람이 관리하는 소나무에서 볼 수 없는 야성이 흘러넘친다.
햇댓등에서 두타산까지는 고도를 약 450m 끌어올리는 길. 부침이 심하진 않지만 뚝뚝 땀을 흘리며 묵묵히 걸어야 한다.
두타산의 두타(頭陀)가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불교 용어라 그런지,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처럼 느껴진다. 산행이 수행보다 좋은 점은 누구나 땀을 흘리면 정상을 만난다는 점이다.
통골목이(통골재)는 댓재와 두타산의 중간지점으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댓재, 햇댓등, 명주목이, 통골목이… 그러고 보니 지나온 곳마다 이름이 예쁘다. 통골목이에서 두타산 전위봉 격인 1243봉까지 가파른 오르막이 고비다. 1243봉부터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은 그야말로 천상화원. 말나리, 동자꽃, 모시대, 풀솜대, 눈개승마 등이 길섶에서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실컷 꽃구경을 하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잡목들이 한순간 사라지고 널찍한 두타산 정상이 나타난다.
산정은 그동안 답답한 시야를 보상하듯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북쪽으로 청옥산(1403m)의 넉넉한 품은 달려가 안기고 싶고, 그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출렁이는 백두대간 능선은 참으로 통쾌하다. 백두대간 능선이 감싼 깊은 계곡이 바로 무릉계곡이다.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니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가 두타산 발끝을 간질이고 있다.
●두타산의 숨은 보물, 두타산성
하산은 청옥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르지 않고, '무릉계곡 관리사무소'란 팻말이 붙은 북쪽 능선을 따른다. 그 이유는 두타산성을 보기 위해서다. 20분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조망이 트이는데, 놀랍게도 청옥산으로 이어진 능선 조망이 두타산 정상보다 빼어나다.
과연 명불허전, 두타산이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산세를 가진 곳 중의 하나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다. 이어지는 쉰움산 갈림길에서 무릉계곡 방향을 따라 20분쯤 내려가면 고풍스러운 소나무들과 빼어난 암봉이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한다. 이곳이 두타산이 꼭꼭 숨긴 보물인 두타산성이다.
산성은 1414년 조선 태종 때 축성했다고 전해지나 102년 신라 파사왕 때 처음 쌓았다고도 한다. 이처럼 빼어난 장소를 우리의 선인들이 그냥 놔둘 리 없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1224~1300)가 이곳에 은거하며 스스로 두타산거사(頭陀山居士)라 불렀다고 한다. 한민족이 단군을 시조로 한 단일민족임을 처음으로 밝힌 역사서 제왕운기(帝王韻紀)는 이곳에서 탄생하게 된다.
두타산성을 내려와 산성십이폭을 지나면 드디어 무릉계곡으로 떨어진다. 이곳에서는 무조건 쌍폭과 용추폭포를 감상해야 한다. 쌍폭은 바른골에서 용추폭포를 거친 물과 박달골에서 내려온 물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루어낸 자연의 걸작품으로 쌍갈래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2분 거리의 용추폭포는 상담, 중담, 하담으로 나누어진다. 상담과 중담은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어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며, 하담은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선경을 보여준다. 이제 계곡에 탁족하는 시간만 남았다. 신발끈을 풀고 첨벙! 발을 담그면 이것이 우화등선(羽化登仙) 아닌가.
글 사진 mtswamp@naver.com
● 가는 길과 맛집 동해시내에서 무릉계곡까지 버스가 수시로(06:30~21:00) 다니며 30분 걸린다. 댓재는 삼척시외버스터미널(033-572-2085)에서 1일 3회(07:30, 13:30, 16:30) 운행하는 광동행 버스를 이용한다. 무릉계곡 입구에는 민박을 겸하는 맛있는 식당이 많다. 김원기 전 백두대간 보존회장이 운영하는 반석상회(033-534-8382)의 산채비빔밥과 더덕구이가 산꾼들에게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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