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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대통(행운)]/남는얘기

[스크랩] 부소산성과 낙화암

by 팬홀더/자운영(시적성) 2008.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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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석혼축산성.
부소산성 /부소산성(사적 제5호)의 군창지, 충남 사적 제5호. 둘레 2,200m, 면적 약 74만㎡.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어감으며 흐르는 백마강에 접해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을 1차로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에 포곡식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泗沘城)·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538년(성왕 16)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여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국도를
수호한 중심산성이었다. 대개 성왕의 천도를 전후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500년(동성왕 20)경 처음 으로
테뫼식 산성을 축조하고, 성왕이 천도할 무렵 개축한 뒤 605년(무왕 6)경 완전한 성을 이룬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먼저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테뫼식 산성은 현재 군창(軍倉)터가 있는 곳으로 둘레 1,500m의 성벽을 등고선을 따라 거의
토축했는데, 일부 석축한 부분도 있다.
이 성 안에는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창 자리와 백제식 가람의 방형 건물터가 있으며, 유인원기공비(劉仁願紀功碑)도 이곳에 있다가 부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은 영일루(迎日樓)와 반월루(半月樓)가 있다.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표고 106m 지점 사비루(泗沘樓) 부근에 약 700m 둘레의 테뫼식 산성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비루와 망루지(望樓址)가 남아 있다.
이 두 테뫼식 산성의 외곽선을 포곡식 산성이 연결하고 있어 백제의 독특한 산성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성내에는 동·서·남문지가 있으며, 북쪽 골짜기에 북문과 수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고란사(皐蘭寺), 낙화암(落花巖), 서복사(西復寺) 터, 궁녀사(宮女祠) 등이 있다.
부소산성은 주위의 보조산성인 청산성·청마산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했으며, 평시에는 왕과 귀족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비원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이진삼 장군을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captai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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